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두드리면 열릴지어다"…지역주의 '철옹성' 무너지나

(서울=뉴스1) 김영신 | 2014-07-31 11:59 송고
전남 순천 곡성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31일 오전 전남 순천 덕암동 역전시장에서 한 지역주민에게 당선인사를 하며 선거운동 당시 사용하던 확성기를 전달하고 있다. 2014.7.31/뉴스1

7·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는 우리나라의 고질병으로 불리는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데 기여한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가장 가깝게는 6·4 지방선거, 멀게는 정권교체에서부터 불던 지역주의 완화 흐름이 이번 재보선에서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분출되면서다.

우선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새누리당과 전신 정당들에게 '불모지'인 호남 지역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하며 당선 깃발을 꽂는 정치사적 대이변이 발생했다.

이진곤 경희대 객원교수는 "이정현 의원 당선으로 당장 한국사회 지역주의가 눈에 띄게 완화됐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완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준 분명한 단초"라고 말했다.

양 거대 정당의 공천장이 영호남 지역에서 곧 당선이라는 공식은 일찍부터 조금씩 균열조짐을 보여왔다.

조경태 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등 PK(부산·경남) 지역에서 새정치연합과 구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사례가 있다.

TK(대구·경북)과 광주·전남 지역의 지역주의는 보다 견고했다.

광주·전남에서소선거구제로 국회의원을 뽑기 시작한 1988년(13대 국회) 이후 새누리당 측 후보가 당선한 것은 이정현 의원이 첫 사례다.

호남 전체로 보면 1992년 양창식 전 의원(전북 남원), 1996년 강현욱 전 의원(전북 군산)에 이어 이 의원이 세번째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 의원이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도 오로지 본인의 개인기로만 일궈낸 승리라 그 의미가 더하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박 대통령 최측근인 이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시대에 대한 피해의식과 소외감을 짙게 깔려 있는 호남에서 당선한 것은 분명히 강고한 지역주의 벽이 완화하고 있다는 조짐"이라며 "이에 대한 평가가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하루 아침에 일궈낸 기적은 아니다.

이 의원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광주 광산구 시의원에 출마해 10.05% 득표율을 기록했었다. 2004년 17대 총선 광주 서구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는 1.03%의 득표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제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한나라당 내에서 '여당 내 호남 지킴이'를 자처한 데 이어 2012년 19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도전장을 내 39.7%라는 의미있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김부겸 새정치연합 전 의원 역시 19대 총선에서 '대구 강남'인 수성구을에 출마해 40.42%을 얻었고,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대구시장후보로 나서 40.33%를 얻었다.

정치권에서는 "김부겸에게서 지역주의 극복의 조짐을 봤다면, 이정현에게서는 희망을 봤다", "두드리니 철옹성이 열린다" 등 해석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이번 재보선은 영호남이 각 지역기반 정당 후보를 결코 덮어놓고 찍어주지 않는다는 냉엄한 민심도 보여줬다.

이번 재보선 15개 지역구 중 광주 광산구을, 부산 해운대구·기장군갑의 투표율은 각각 22.3%, 22.9%를 기록해 전국 꼴찌를 기록했다.

재보선에서는 통상적으로 투표율이 낮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국 평균(32.9%)에 10% 이상 못 미친다는 것은 급변하고 있는 영호남 민심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창렬 교수는 광주 광산을에 대해 "광산을의 낮은 투표율은 권은희 후보에 대한 광주 시민들의 일종의 '비토'"라며 "낮은 투표율로 권 의원을 '정치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호남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호남 지역주의 아성이 깨지고 있다는 증거는 광주·전남 뿐 아니라 이번 재보선 곳곳에서 드러난다.

울산 남구을에서 새누리당 박맹우 후보가 55.8%로 당선했으나, 무소속 송철호 후보도 44.2%를 기록했다.

전남 나주·화순에서도 새누리당 김종우 후보가 22.2% 득표율을 기록하며 20% 벽을 깨뜨렸다.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에서는 새누리당 이중효 후보가 18.7%를 기록했다. 이 후보는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전남지사에도 출마했었는데, 당시 총 득표율 9.55%에 비교하면 이번 재보선에서 진일보한 셈이다.

지역주의가 완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갈 길은 멀다는 게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이정현 의원 당선이 정치사의 큰 획을 긋는 일은 맞지만, 우리 당 차원의 승리라기 보다는 오로지 개인이 거둔 승리"라며 "호남주민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해석하는 게 오히려 자만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창렬 교수도 "지역주의가 서서히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지역주의가 깨진다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순진한 발상"이라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념적 대립·갈등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진곤 교수는 "지역주의 변화 속도가 너무 늦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착실하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며 "이번 재보선 후 이런 신호가 다시 끊길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또 이어질 것이고 한국 정치는 전체적으로 진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riwhat@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