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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펀드 변양호 대표 '세계적 펀드의 꿈' 멈췄다

'LG실트론 투자실패 따른 파산사태 수습위해' 물러날 것

(서울=뉴스1) 배성민, 이지예 | 2014-07-29 16:24 송고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 © News1 국제적 마인드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세계적인 펀드를 만들겠다는 전직 관료 출신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의 꿈이 결국 스톱됐다.
 보고펀드가 최근 LG실트론 투자실패로 인한 파산사태를 돌파하기 위해 변양호 대표가 물러난다고 29일 밝혔다.

 LG실트론, 동양생명 등 보고1호 PEF(보고1호)의 잔여 투자자산 회수를 마무리한 뒤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사실상 보고펀드에서 그의 역할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금융계에서는 변 대표의 2선 후퇴가 LG실트론 투자 실패의 책임을 따지기 위해 LG그룹과 그룹 총수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관가에서의 부상과 민간 전직 이후 제2의 용퇴가 모두 직간접적으로는 LG문제와 연결된 것이 공교롭다.

 변 대표의 공무원 시절은 대기업의 성장 역사와 함께 해 왔다. 관료 사회와 기업은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주요 축이었다. 금융사의 몫도 있었지만 관치금융이라는 비아냥이 상징하듯 자금 중개자 정도의 역할에 그쳤다.
 외환위기 때 외채협상의 실무를 주도했고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 시절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1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것도 이 시절 전후의 일이다.

 그가 특히 금융정책국장(옛 이재국장)을 맡으며 국내는 물론 국제 금융계에서도 파워맨으로 떠오른 2000년대 초반 이후 그의 재직 시기 중 상당부분은 대기업 부실과 관련된 문제 해결에 할애됐다. 특히 카드사태로 상징되는 2003 ~ 2004년 당시에는 삼성카드, LG카드(현 신한카드) 등 대기업 계열 카드사 등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느라 씨름해야 했다.

 특히 LG그룹이 카드사는 물론 금융업 전체를 포기하는 과정에서도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당시에는 모두 국장)과 함께 변 대표도 현직 국장으로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그뒤 김 전 위원장과 윤 전 행장은 장차관으로 승승장구했지만 변 대표는 금융정보분석원장이 마지막 공직이었다. 2005년 관가를 떠나면서 그는 "민간이 훌륭하다고 하는데 직접 나가 얼마나 잘 하는지 보고 싶어 결정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사퇴의 변을 남기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쳤다는 의미다.

 보고펀드라는 명칭도 외국 자본에 대항한다는 의미로 9세기 한·중·일 해상교역을 지배했던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에서 따올 정도였다.

 보고펀드는 설립 이후 BC카드, 동양생명, 아이리버, 노비타, LG실트론, 버거킹 등을 인수하며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투자한 LG실트론 실적이 악화되면서 대출금 2250억원에 대한 이자를 내지 못했고 투자 회사(SPC)가 채무 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BC카드를 KT에 매각하는 등 성공 사례도 있었지만 빠져나가지 못 한 돈이 더 많았다.  

 마지막 승부수로 LG그룹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LG그룹 수뇌부 등의 상장추진 연기와 LG실트론의 무리한 계열사 지원으로 LG실트론이 영업난에 빠졌다는 것이 소송 이유였다.

 하지만 LG그룹은 보고펀드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가 손실이 커지자 억지를 쓰고 있다며 맞소송을 예고했다.

 LG그룹의 금융사를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하던 2003 ~ 2004년 겨울 전후의 상황이 2014년 여름에 유사하게 재연됐지만 달라진 것이 있었다. 공권력으로 상징되는 정부에서 물러난 변양호 대표는 대기업과 은행 등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여와야하는 입장이 된 반면 LG그룹은 여전히 국내 수위권의 굳건한 대기업이다. 

 해상왕 장보고의 꿈도 권력 갈등 속에 스러져간 것처럼 '세계적 펀드를 키워보겠다'는 보고펀드 변양호 대표의 꿈도 일단은 멈췄다. 쉼표가 될지, 마침표가 될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ba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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