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세월호 참사 100일] 기억을 갈무리하는 사람들

“대중이 아픈 기억에 직면해 승화시키도록 돕는 효과 있어”

(서울=뉴스1) 류보람 | 2014-07-23 17:33 송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4일로 100일이다. 4월 사고 직후 안산과 서울시청 앞을 비롯한 전국의 분향소는 내 일처럼 아파하는 사람들과 노란 리본, 애도의 쪽지로 가득했다.

    

이들이 남긴 기록들은 그대로지만, 석 달 남짓 되는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의 마음도 변화의 시기를 겪었다.

    

온라인에서는 희생자 가족들이 정부에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여론도 있고,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중인 유가족 천막을 찾아가 소란을 피우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는데 애도 분위기 속에서 오래 이런 성향이 차단되면 피로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분노로 표출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사회를 향하던 초기의 분노가 이제는 '자꾸 목소리를 내 망각을 방해하는' 가족들에게로 향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세월호의 기억을 환기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기록보존, 다큐멘터리 제작 등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을 갈무리하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은 8월 말 피해자 가족들이 다수 거주하는 경기 안산시 고잔동에 ‘세월호 기억 저장소’ 1호 사무실 개소를 위해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세월호 기억 저장소’는 사고 초기부터 기록연구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진도와 안산 등지에서 수집한 영상, 사진 등 사고 관련 기록을 정리하고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상자 400여개 분량의 전체 기록물은 별도의 서고를 마련해 보관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기록 갈무리 작업에 앞장서는 이유에 대해 “누군가는 사회적 기억을 형성하는 데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사고는 한국사회 구조적 모순의 결정판”이라며 “아이들을 포함한 선량한 국민들이 처참한 피해를 본 참사를 사회 구성원들이 기억한다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00일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이라는 요구를 위해 여전히 단식과 행진 등을 감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모든 과정이 희망을 위한 움직임으로 기록돼야 한다”고 밝혔다.

    

문인들도 세월호의 아픔을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한 기록을 세상에 내놓는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시인 69명은 24일에 맞추어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라는 제목의 추모시집을 발간한다. 김기태, 함민복 시인 등은 같은 날 저녁 7시30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추모제 무대에도 올라 시를 낭송한다.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앞으로의 과제는 망각과의 투쟁”이라며 “기록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역사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 문인들이 문인들의 방식으로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시집의 판매 수익은 아름다운재단에 기부돼 세월호 추모사업 등에 쓰일 예정이다.

    

지난 4일부터 단원고 희생자 박예슬 양의 그림과 디자인 등을 모아 무기한 전시회를 열고 있는 장영승 서촌갤러리 대표는 “사건을 슬픔으로만 되새길 것이 아니라 의미를 공유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이전의 참사들이 그래 왔듯 슬픔을 공유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금방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예슬이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경우지만 꿈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또래 아이들도 많지 않느냐”면서 “예슬이가 남긴 기록이 살아 있는 아이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 또한 기록을 갈무리해 보여주는 의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학계에서도 학회나 토론회, 연구 프로젝트 등을 통해 참사를 복기하고 대안을 마련하려는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정책포럼은 참사 100일을 맞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바람직한 재난관리정책’이라는 주제로 공동토론회를 연다.

    

이 밖에도 내년 6월 개봉을 목표로 하는 ‘거꾸로 된 세상’을 비롯해 시민들의 재능기부를 통한 다큐멘터리들이 가족대책위와의 협의를 거쳐 제작되고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는 24일 제주항에 특설 무대를 마련해 ‘영혼을 위한 소나타’라는 제목으로 독주회를 연다. 장소는 희생자들의 목적지였지만 다다르지 못한 곳이라는 점에서 제주항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람료는 무료다.

    

곽금주 교수는 이와 같은 시도들에 대해 “아프더라도 직접 대면하고 극복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유사한 고통이 닥쳤을 때 지금보다 성숙한 방식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며 “전시나 공연 같은 방식으로 기록을 마무르는 작업들은 사람들을 기억에 대면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괴로운 기억을 단순히 떠오르지 않게 하는 방법은 긍정적인 마무리가 아니다”라며 “상실의 고통을 극복해 '기리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기록’이 직·간접 피해자들이 서로에게 분노를 표출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함께 아픔을 극복해갈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 역시 지난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내한 강연에서 복기(復記)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벡 교수는 “세월호 사고는 특별한 재앙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정치인들은 관행을 답습할 것”이라며 언론과 시민들이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padeok@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