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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또 당당하게”…불법 낙태약 ‘활개’

(서울 = 뉴스1) 권혜정 | 2014-07-19 09:19 송고



"임신 6주차에 낙태약을 알게됐습니다. 처음이라 많이 망설였는데 복용법대로 사용하니 정확히 13일째에 하혈이 멈췄습니다. 낙태가 잘 된 것 같네요."
임신중절수술 등 '낙태'가 엄격하게 금지된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불법 낙태약 거래가 활개를 치고 있다. 경찰 등 사법당국이 수시로 불법 낙태약에 대한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단속의 눈을 피한 낙태약 거래는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 구입할 수 있는 '미프진' 등 낙태약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된 이후 하혈을 유도해 이미 자라고 있는 태아를 사출(瀉出)시키는 약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낙태가 불법인 국내에서는 이같은 낙태약에 대한 유통 역시 불법이다.

그러나 19일 한 포털사이트에 '낙태약'을 검색하자 불과 몇 초만에 수개의 낙태약 사이트가 등장했다. 미국에서 직수입한 낙태약 '미프진'을 판매한다는 한 사이트에 접속하자 "119개 국가에서 매년 700만명의 여성들이 복용하고 있는 정품 낙태약. 임신 초기에는 수술보다 부작용이 적고 안전하다"는 홍보성 문구가 버젓이 걸려 있었다. 일부 사이트는 미프진 수입에 '공식'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 사이트에서는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도 전문의의 처방이 있어야만 복용 가능한 낙태약 '미프진'과 '콤비약', '사이토텍' 등을 40만원 선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임신 주수에 따른 낙태약 복용방법 등도 상세하게 적혀 있었으며 일부 사이트는 해당 약을 복용한 이들을 위해 24시간 상담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낙태약을 파는 사이트에 적힌 전화번호로 문의하자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남성은 "미프진을 구매하려고 한다"는 말에 임신 주수와 평소 앓고 있는 질환, 과거 임신중절수술의 경험 등 간단한 정보만을 묻곤 사이트 혹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주문서를 접수하면 약을 배송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입금이 완료되는대로 당일 배송하겠다"며 "다음날 바로 받아볼 수 있으며 계좌이체만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낙태약을 구입하는 것이 불법 아니냐"는 질문에는 "불법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직수입해 온 정품은 확실하고 부작용도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처럼 손쉬운 방법으로 낙태약을 구입한 이들은 상당수에 달했다. 한 낙태약 판매 사이트의 '후기 게시판'에 접속하자 "효과 좋아요", "감사합니다", "낙태가 된 것 같아요", "미프진 정말 좋아요" 등의 글이 수백개 등장했다.
해당 게시판에는 "임신 6주차에 낙태약을 알게됐네요. 처음이라 많이 망설였는데 (약이) 도착하고 복용법대로 사용했습니다. 복통이 심하다는 후기글을 봐서 진통제도 같이 먹었는데 그렇게 통증이 심하진 않더군요. 정확히 13일째에 하혈이 멈췄고, 아무래도 낙태가 잘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자세한 후기글을 남긴 여성도 있었다.

이외에도 "오늘 두 눈으로 핏덩이(태아)를 봤는데 사람 형체더라", "약 효과가 정말 좋다", "애인이 미프진을 통해 낙태했습니다" 등의 후기글들이 줄을 이었다.

이들 사이트는 각자 홈페이지를 통해 '미프진 등의 낙태약이 안전하다'는 내용을 끊임없이 광고하고 있었다. 한 사이트는 "미국 낙태약 미프진은 부작용과 후유증이 없으며 99.9%의 높은 낙태 성공률을 자랑한다"며 "유럽과 영국, 미국 등 세계 119개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부작용이 없고 산후우울증, 유방암, 난소암 예방에도 탁월하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었다.
일부 사이트는 임신중절수술은 '청소기보다 30배 강한 흡입기를 자궁에 삽입'하는 반면 낙태약은 '마취가 필요 없으며 생리통 정도의 복통' 뿐이라며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퍼뜨리고 있었다. 
사이트는 특히 '미프진' 등의 낙태약이 국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낙태수술은 부작용과 후유증이 심각하지만 한국에서는 낙태 자체가 불법이기에 (한국에서) 좋은 기술을 개발할 수 없다"며 "그러나 12주 이내 낙태가 합법적인 유럽과 영국 등에서는 여성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약을 개발해 임산부에게 처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청산가리를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낙태약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실제 사이트에서도 "약을 먹으니 누가 자궁을 갉아 먹는 듯한 고통이 오더라", "죽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많이 아팠다" 등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글들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의 대변인 최안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미국산 등 정품 낙태약을 파는 것처럼 홍보하지만 정작 성분을 알 수 없는 중국산 낙태약이 배송되는 경우가 상당하다"며 "이처럼 낙태약을 불법으로 판매하는 것은 '청산가리'를 판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품 낙태약을 먹고도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례가 있다"며 "낙태약은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에 의해 처방받고, 복용 후에도 과다출혈 등의 부작용에 즉각 조치가 가능토록 의사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대변인은 또 "낙태약을 먹는다고 해서 낙태가 100% 되는 것은 아니다"며 "태아가 완전히 자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일부가 몸에 남아 있을 경우에는 2차 감염과 자궁내막 손상 등의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사이트들에서 홍보하는 것처럼 낙태약이 임신중절수술보다 더 안전하지도 않다고 전했다. 최 대변인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약처와 경찰 등 사법당국이 의지를 갖고 단속해야 한다"며 "자살 예방을 위해 포털 사이트에서 '자살'을 검색하면 자살 예방 사이트로 연결되 듯 낙태약도 같은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문가 권한성 건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역시 "낙태약이란 것은 프로게스테론이란 임신 유지 호르몬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장기간 복용할 경우 암 유발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외에도 구토와 질출혈, 심한 복통 등의 부작용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그는 "낙태약을 복용해도 10% 전후 가능성으로 태아 일부가 자궁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에는 패혈증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같은 전문가들의 의견에 대해 단속 주체인 식약처는 "낙태약 판매 사이트에 대해 지속적으로 차단하는 한편 낙태약 구매를 근절하기 위한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며 "앞으로 불법 낙태약 단속을 지속적으로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이트 운영자들이 단속에 걸려도 사이트 주소만 바꿔 계속해서 영업을 하는 상황"이라면서도 "인터넷을 통해 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기에 해당 사이트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jung907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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