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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쌤은 영원하다…교사 퇴직 후 '무료 인강' 제2의 인생

[100세시대 행복한 노후만들기] 일하는 노후, 행복한 노후
즐거운 새인생을 시작한 사람들 ⑥ 박용범 박쌤 전산회계 인터넷 카페 운영자
"학생 가르칠 때 제일 행복"… 좋아하는 일 계속 하기로 해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2014-06-15 00:59 송고 | 2014-06-26 09:38 최종수정
편집자주 (창사3주년 특별기획-100세 시대 행복한 노후만들기) 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십니까.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은퇴 후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시기의 자유는 준비된 사람만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은퇴 후 새로운 삶을 만끽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준비해야 할까요. 뉴스1이 창간 3주년을 맞아 특별기획을 통해 그 답에 접근해봅니다. (편집자주)
은퇴 후 무료로 전산회계 동영상 강의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박용범 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삼양미디어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4.6.1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퇴직은 가슴이 뛰고,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또다른 기회입니다. 자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다면 말이죠." "제주에서 일했지만 올레길 한번 못 가 봤습니다. 하지만 은퇴한 지금은 내가 시간만 내면 되는 거죠."

교사 생활을 접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했다. 그대로 근무했다면 정년퇴직 시기인 11년 후까지 '선생님,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안정적인 직장과 월급, 퇴직 후 늘어나는 연금 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고교 시절 자신의 스승이었던 교장선생님은 그를 10여번 넘게 불러 만류했다.

박용범(53) 박쌤 전산회계 네이버 카페 운영자는 지난해 3월 25년 간의 교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물론 안정적인 연봉을 팽개치고 나오기는 쉽지 않았지만 13일 기자를 만난 그는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MBC 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와 미래에셋생명이 함께 하는 '은퇴설계 수기공모전'에 알렸고 가작으로 수상했다.

박씨는 제주도의 한 상업계 고교에서 전산회계 과목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농담을 곁들인 수업' 하는 것을 좋아했고 어려운 회계 과목을 쉽게 가르치던 그는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그는 수업 외 분야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교사였다. 컴퓨터 게임에 중독돼 자퇴하던 학생들의 마음을 수없이 돌려세운 게 유명해져 한국중독상담협회 등의 기관에서 초청 강연을 하기도 했다. 취업 업무 담당 교사를 맡은 2011년에는 '선 취업 후 진학'을 주장하면서 2009년 6명이었던 졸업생 취업자 수를 2012년 89명으로 증가시켰다.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각종 금융기관·공기업에 다수 취직했다.

문제는 그에 따른 격무였다. 2010년부터 3년 동안 주말과 방학 때도 거의 출근했다. 잦은 출장과 불규칙한 식사, 행정 공문 처리가 이어졌다. 지속된 스트레스로 어깨 질환과 허리 디스크, 잇몸병을 달고 살았다. 진통제를 복용해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나중에 출근 통계를 보니 제가 3년 동안 일요일에 10번 쉬었더라구요. 평일에는 수업에 출장, 회의가 이어지니 주말에 학교를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인생 대부분을 그 곳에서 살았는데 정작 제주 올레길에 한 번 가보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학교에 업무 분담을 요청했지만 인력 부족으로 무산됐다. 게다가 사립 학교에선 한 번 맡은 일을 계속 하는 경향이 있기에 지속적으로 업무에 시달려야 할 상황이었다. 학생이 꿈을 키워가는 것을 도와주는 게 자식 키우는 기쁨 못지 않았지만 '건강을 잃고 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말을 떠올리며 퇴직을 결심했다.

은퇴 후 무료로 전산회계 동영상 강의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박용범 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삼양미디어에서 강의를 녹화하고 있다. 2014.6.1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퇴직하기로 마음먹은 후 자신을 돌아봤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어디까지는 견딜 수 있지만 어디부터는 하지 않을 것인지. 자신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먼저 알아야 그 모습대로 살 수가 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자체는 좋았다. 자신이 아는 지식을 가르쳐주고 거기에 호응이 오는 것을 그는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표현했다. 앉아있는 것 보다 돌아다니는 쪽을 선호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새 직업의 방향이 잡혔다.

"인생 100세 시대를 살면서 앞으로 남은 50년 삶을 진지하게 살 수 있는 계획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배우기보다는 제가 가장 좋아하면서, 사업 또는 평생 직업으로 실현 가능성이 있고, 남들보다 전략과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약간의 수익을 보상받을 수 있는 영역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해답은 졸업한 제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나왔다. '선생님의 수업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제자의 말을 듣고 이거다 싶었다. 전국의 상업계 특성화고 학생과 취직을 위해 회계 자격증을 공부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이버 동영상 회계 강의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강의는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교직원 연금이 매달 나오고 퇴직하기 직전에 쓴 고등학교 회계 교과서의 인세 수입도 향후 몇 년 동안 고정적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둘을 합치면 교사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먹고 살 정도의 수입은 됐다.

"전산회계 학원이 비쌉니다. 1·2급 묶어서 30만원 정도 해요. 고등학생들에겐 부담이죠. 저는 앞으로도 이 강의를 영원히 무료로 할 겁니다. 이걸로 돈을 벌 생각은 없어요. 어차피 연금과 교과서 인세도 있고. 동영상 강의 교재의 인세 정도가 제가 얻는 수입의 전부일 겁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촬영한 강의는 그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박쌤 전산회계'에 올려져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 현재 전산회계 2급 강의 영상이 완료됐고 다음 달 초까지 수능 직업탐구 회계원리 강의를 올릴 예정이다. 회계원리 기초와 전산회계 1급, 전산세무회계 2급 강의 동영상은 11월까지 올리기로 했다.

전산회계 2급과 수능 회계원리, 회계원리 기초 수업은 항상 무료로, 고화질 영상이 필요한 전산회계 1급과 세무회계 2급 수업은 무료 제공을 원칙으로 하되 교재 인세로 손익을 충당하지 못하면 시중가의 10% 정도인 2만원 가량을 받기로 했다.

은퇴 후 무료로 전산회계 동영상 강의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박용범 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삼양미디어에서 강의를 녹화하고 있다. 2014.6.1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수입은 줄었지만 삶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학생들 앞에서 좋아하는 강의를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 취업 업무 담당 교사였던 경험을 살려 학생들이 네이버 지식인이나 카페 게시판에 올리는 취업 고민 상담에 응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아내는 밤새 컴퓨터 앞에서 댓글을 다는 남편을 보며 '미쳤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박씨는 "그게 내 적성"이라고 말했다. 소속만 무소속으로 바뀌었을 뿐, 그는 여전히 학교에 몸담고 있다.

"교직원 연금도 받고 교과서 인세도 받는데 그런 혜택이 가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저는 굳이 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 학원비가 비싼 아이들에게 무료로 수업을 듣게 해주고 진로를 고민하면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제가 지금껏 주변에서 받은 것들을 환원할 때가 온 거죠."

박씨는 자신처럼 퇴직한 교사들을 정부가 적극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사장시키지 말고 사이버 강의나 교육 봉사활동에 활용하는 것이다. 본인의 회계 과목뿐 아니라 다른 과목의 무료 강의들을 모아 또 하나의 새로운 '학교'를 사이버 상에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평생 직장'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이젠 '평생 직업'을 찾아야 해요. 직업을 바꾸면 그만큼 헤매고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평생 해왔잖아요. 그와 관련한 자격증을 따고 전문성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자신이 잘 하면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걸 하세요."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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