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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기 추모식

남산 기념관에서 개최...시민, 학생 등 400여명 참석

(서울=뉴스1) 김정욱 기자 | 2014-03-26 06:18 송고

26일 오전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순국 104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을 비롯한 추모객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2014.3.26/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린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4주기 추모식이 26일 오전 서울 남산공원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최완근 국가보훈처 차장과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시민, 학생, 유족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안중근 약전 봉독과 보훈처 차장 및 광복회장의 추모사, 추모공연, 헌화 등으로 진행됐다.

이날 오후 6시부터는 서울 세종호텔에서 일본과 중국 측 인사가 함께 참여해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 및 평화사상을 되새기고 국제 친선교류 행사가 실시된다.

1879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의 소식을 듣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회복의 길을 강구했다.

그는 부친상을 당한 뒤 자신의 재산을 투입해 삼흥(三興)학교, 돈의(敦義)학교 등을 세워 인재교육에 힘쓰기도 했다.

광무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국권이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안 의사는 이범윤·김두성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안 의사는 1908년 의군장이 돼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한 뒤 경흥·회령 등지에서 대일항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연추(煙秋)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을 만나 구국의 길을 찾기도 했다.

1909년 봄에는 김기열, 백낙길, 박근식 등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을 맹세했다.

1909년 9월 일제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중국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안 의사는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를 계획한다.

안 의사는 의거 당일인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기다리다 9시30분께 기차에서 내려 각국 영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명중시켰다. 당시 안 의사는 러시아군에 의해 체포될 때 러시아어로 “코레아우라(대한만세)”를 연호했다.

1909년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일본 감옥으로 이송된 안 의사는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평화의 정착을 주장했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다음 달인 3월26일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k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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