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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노예 섬'이라뇨…" 신의도 주민 하소연

(신안=뉴스1) 박준배 기자 | 2014-02-20 04:37 송고 | 2014-02-20 05:15 최종수정
전남 신안군 신의면 염전© News1 박준배 기자
"무슨 말을 하겠어요. 매일같이 (언론에) 두들겨 맞고만 있는데…"

텅 빈 잿빛 염전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19일 인적이 뚝 끊긴 전남 신안군 신의면의 한 염전에서 홀로 소금물길 작업을 하던 신모(48)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씨는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어떻게 말을 하든 전 세계적으로 노예 부리는 나쁜놈들이 돼 있다"며 말을 아꼈다.

신안군 압해읍 선장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남서쪽으로 2시간30분을 달리면 도착하는 섬 신의도. 장애인이 섬 염전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다 편지 한 통으로 구출된 이른바 '염전 노예' 사건이 발생한 신의면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신의도는 전국 최대 규모의 천일염 생산지로 염전면적 537㏊에 239개 생산업체가 연 5만1000톤을 생산한다. 초등학교 2곳에 중학교 1곳이 있고 주민은 820여세대에 180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규모가 적지 않은 섬이지만 염전은 황량했다. 들고 나는 바닷물을 끌어들여 말리고 또 말려 하얗게 영근 소금꽃을 채취했을 염전엔 철이 지난 데다 사건의 여파로 염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신의면의 한 농가 창고로 향했다. 지적장애인 채모(48)씨 등이 거주했던 곳이다. 숙소는 소금 가마가 쌓인 컴컴한 창고 안쪽에 2평 남짓하게 마련돼 있다.

조립식 판넬로 만든 숙소 바닥엔 전기장판이 깔려 있고 이불과 TV, 점퍼 등 겨울옷 3~4벌이 걸려 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청소를 했는지 내부는 깨끗했다. 숙소 옆에는 샤워장과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부엌이 있었다.

신의파출소 경찰 관계자는 "더 열악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이 정도 시설"이라고 말했다.

염전 종사자인 지적장애인이 살고 있다는 인근의 또 다른 숙소를 방문했다. 하지만 불안해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염부를 만나지 못했다.
지적장애인 채모씨가 거주한 숙소. 소금가마니가 쌓인 창고 안쪽에 조립식 판넬로 만들었다. 바닥에 전기장판이 깔려 있고 이불과 TV 등이 놓여있다© News1

신의면사무소 앞에는 주민들 30여명이 모여 있었다. 이날 주민들은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간담회를 하기 위해 모였다.

주민들은 언론을 불신했다. '노예 섬'이라는 표현에 거칠게 항의했다. 주민 홍모(53)씨는 "극히 일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면민 전체가 호도를 당하고 있다"며 "언론이 왜곡보도를 했다"고 항변했다.

그는 "서울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성폭행 도시'라고 보도하느냐"며 "아무리 섬이라지만 '노예 섬'이라고 함부로 써선 안된다"고 따져 물었다.

염전 종사자를 직업소개소를 통해 데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직업소개소'의 횡포를 고발하는 주민도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천일염은 3월부터 10월까지 생산한다. 이 때문에 늦어도 3월 초에는 목포의 직업소개소에서 염부를 데려온다. 통상 직업소개소에는 3개월 월급치의 20%를 수수료로 준다고 한다.

월 급여 140만원에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데려오면 수수료는 80여만원이지만 염부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 됐다.

한 주민은 "우리가 을이다. 소개소에서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다"며 "수수료로 10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주고 있다"고 말했다.

염부를 데려오더라도 문제다.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을 근무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또 다른 주민은 "3~4일만 근무하고 떠나더라도 법적으로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도망가는 경우가 많다"며 "수수료만 고스란히 날리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 News1

직업소개소가 신분을 속이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소개소에서 정당하게 신분이 확인된 인력을 소개해줘야 하지만 신분증을 위조하거나 신분을 숨기고 소개한다"며 "나중에 파출소에서 신원을 조회해 보면 가출인이나 범법자, 신용불량자 등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신용불량자나 범법자의 경우 통장에 넣어주고 싶어도 차압당하니 넣지 말라고 나갈 때 달라고 하기도 한다"고 거들었다.

지적장애인 등은 오히려 보살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박모(57)씨는 "지적장애인 아들을 둔 부모가 도저히 서울에서 데리고 있을 수 없다며 보호해달라고 부탁했다"며 "각서와 인감증명서까지 받았지만 외부에서는 장애인 노동착취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2년 간 데리고 있다가 그동안 임금 1500만원을 주고 보냈더니 부모가 돈을 들고 직접 찾아와 월급 안줘도 되니 보살펴달라고만 하는데 어떡하라는 거냐"며 각서와 인감증명서를 꺼내들었다.

주민들은 몇몇 사람의 잘못을 모두의 잘못으로 매도당하는 게 억울하다고 하면서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선 고개를 숙였다.

염전 일을 시작한 지 10년됐다는 한 주민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알면서도 못 본 척하려한 부분에서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고 고개를 떨궜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홍모씨의 친구라는 한 주민은 "친구가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어제 수면제 수십알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며 "잘못한 부분은 잘못한 대로 처벌받고 도려내야겠지만 섬에 사는 1800여명의 주민을 모두 '노예'를 부린 나쁜 주민으로 오도하지는 말아달라"고 연신 당부했다.


nofat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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