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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48주기 추모식

16일 서울현충원 묘역 7호서 거행

(서울=뉴스1) 김정욱 기자 | 2013-09-16 02:07 송고



우리나라 국가(國歌)인 애국가를 작곡한 음악가 안익태 선생의 48주기 추모식이 16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 7호에서 거행된다.


‘안익태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고인의 애국애족정신을 함양하고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됐다.


추모식에는 유가족, 음악계 인사, 추모객 등 6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1906년 12월5일 평양에서 태어난 안익태는 6세 때 동네 교회에서 풍금(오르간)을 접하게 되면서 음악인으로서 인생을 꿈꾸게 됐다.


1918년 숭실중학교에 입학한 후 재학 중 친일교사 배척을 주동했던 그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 일본경찰의 쫓김을 받게 됐다.


이후 안익태는 일본으로 건너가 1921년 동경 세이소꾸중학교를 거쳐 1926년 동경 국립음악학교에서 본격적인 음악공부에 전념했다.


1930년 귀국한 그는 평양 경찰들의 감시를 받게 되자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거 신시내티 음악대학에 입학했다.


1932년에 신시내티 시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1첼로 주자로 활동을 했다.


1935년 7월 필라델피아 음대를 졸업하면서 동양인 최초로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에 입단하기도 했다.


이후 안익태는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스페인 바르셀로나 교향악단, 영국 런던 로얄필하모니 등 세계 유명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했고 스페인 마요르카 교향악단을 창단해 세상을 떠나기까지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다.


안익태는 3·1운동 때 영국의 민요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애국가를 붙여 노래하는 것을 보고 미국유학 당시 우리나라의 애국가 작곡에 대한 염원을 두다 1935년 11월 애국가 작곡을 완성했다.


그는 ‘애국가’를 비롯해 ‘한국환상곡’, ‘한국무곡’ 등을 잇따라 작곡하고 이를 세계에 알리면서 존재를 드러냈다.


안익태는 1965년 9월16일 향년 59세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별세했고 1977년 7월8일 한국음악협회장(葬)으로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1946년 7월5일 안익태와 결혼한 스페인인 부인 돌로레스 딸라베라 여사는 2009년 2월16일 향년 93세로 바르셀로나에서 별세했고 같은 해 7월21일 안익태 묘소에 합장됐다.


로리타 안이라고도 불렸던 딸라베라 여사는 1965년 안익태 선생이 별세한 이후 애국가의 저작권을 상속받아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통해 신탁관리해왔다.


이후 딸라베라 여사는 “애국가는 한국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아무런 조건없이 한국 국민에게 드리겠다”며 지난 2005년 3월16일 우리 정부에 애국가 저작권을 무상으로 저작권을 기증한 바 있다.


안익태의 부인 로리타 안 여사의 유해가 지난 2009년 7월21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안익태 묘소에 합창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News1






k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