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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전쟁사]하이트 '압승'...오비 매각시 새국면

하이트, 브랜드력 오비보다 낫지만 1등 자리뺏겨...각축전

윤진원 / 주류문화연구소장 | 2013-07-27 01:01 송고
© News1 박소영 기자


지난해 우리국민 1인당 맥주 소비량은 4만8510ml. 맥주집 500cc 저그잔으로 환산하면 무려 97잔을 마신 셈이다. 시장규모 역시 3조8000억원 달해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막걸리, 소주 등을 제치고 한국 사람의 혼을 빼앗으며 왕좌에 올랐다. 이런 결과는 맥주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청량감과 풍미, 생맥주를 보관 운송하는 케그, 냉장시설의 발달, 소득향상, 세상변화에 둔감했던 막걸리 업계의 진부함 등의 영향이 있었다. 여기에 하이트와 오비 양대 맥주 회사의 전쟁 같은 불꽃 튀는 경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맥주가 들어온 것은 1876년 개항과 함께 일제에 의해서다. 삿포로 맥주를 시작으로 1900년 전후로 '에비스'와 '기린맥주'가 들어왔다. 1910년에는 이들 맥주회사들이 서울에 지사 개념의 출장소를 개소하고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갔다. 국내 소비량 증가에 따라 이들 일본맥주회사가 국내에 맥주회사를 설립하는데 1933년 일본의 '대일본맥주(大日本麥酒株)'가 '조선맥주'를 설립하고, 같은 해 12월 '기린맥주'가 '쇼화기린(昭和麒麟)맥주'를 세운다.

이때부터 맥주업계 지존의 자리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전면전은 벌써 80년이 지났다. 이들 양대 맥주회사는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적산관리체제를 거쳐 1952년 크라운 맥주를 생산하던 '조선맥주'(현 하이트진로)와 '동양맥주'(현 오비맥주)로 재탄생한다.

◇ 최근 10년간 시장점유율 하이트 압승...'하이트맥주' 마케팅전략 적중
© 하이트진로 제공


광복 후 본격적으로 치열한 각축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1975년에는 한독맥주에서 본격 독일식 맥주를 표방한 '이젠백맥주'가 출시된다. 한독맥주는 막대한 광고비를 투입하며 양사 체제의 맥주시장에 틈새를 벌리며 1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한다. 당시 시장점유율을 보면 오비맥주 51.7%, 크라운맥주 32.9%, 이젠백맥주 15.4%였다. 그러나 조선맥주와 동양맥주의 치열한 견제에 따른 과도한 출혈로 이젠백은 시장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대표자가 불법외화유출로 구속되는 등의 이유로 결국 조선맥주(크라운맥주)에 흡수 합병된다.

그러나 이 시기 오비맥주가 확실하게 등극을 하게 된다. 시장점유율도 57%로 껑충 뛰어올라 확실한 1위 자리에 등극한다. 이후 오비맥주는 1990년대 중반까지 20여년간 이 자리를 지킨다.

시장에 새로운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조선맥주가 Hite(하이트) 맥주를 출시하면서부터다. 크라운을 버리고 하이트맥주 출시한 조선맥주는 회사의 모든 것을 건 것에 다름없는 일이었다. 1992년 70% 이상 육박했던 오비의 점유율이 급격히 추락했다. 급기야 1996년 맥주시장에 놀라운 일이 생긴다. 만년 2위였던 조선맥주가 하이트 맥주 하나로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한국 맥주사에 일대 사건이 생긴 것이다.

성공의 배경에는 1991년 3월14일 경북의 구미공단 두산전자에서 페놀원액 30만톤을 유출시키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고조되고 있던 시기라 두산그룹 소유였던 오비맥주는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 위에 하이트맥주의 철저한 마케팅 전략 시장에 적중했다. '지하 150m 100% 천연 암반수로 만든 순수한 맥주' 광고 콘셉트의 하이트는 쓰나미처럼 시장을 휩쓸었다. 맥주병 패키지는 국내 최초로 병의 뒷면에 부착하는 '백 레이블'(Back Label)과 병의 목에 부착하는 '병목 레이블'(Neck Label)을 부착해 차별화를 뒀다. 새로운 공법의 신제품 하이트에 페놀사건의 반사이익과 경영혁신의 3박자가 완벽히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이후 하이트는 20년간 승승장구하며 지존의 자리를 지켰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시장점유율로 보면 9:1로 하이트가 압승을 했다.
© News1


◇2012년 20년만에 오비1위 자리 탈환...영원한 1등 없어

그러나 2011년부터 다시 전세는 기울어 2012년 오비맥주는 시장점유율 57%로 44.3%의 하이트를 따돌리며 약 16년만에 1위 자리 탈환에 성공, '영원한 1등은 없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이는 현 하이트진로가 20여년 간의 장기 집권(?)에 따른 브랜드 노후화를 막지 못한데다가 2010년 야심차게 출시했던 신제품 '드라이피니시 d'부진이 주요 원인이다.

여기에 오비맥주가 2010년 당시 장인수 하이트주정 대표를 전격 스카우트한 것이 시장에 큰 영향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장인수 현 오비맥주 사장은 1980년대부터 진로에서 잔뼈가 굵은 영업 통으로 주류를 유통하는 종합주류도매사들로부터 영업의 귀재로 불리며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하이트가 소주회사 진로를 인수하며 하이트진로가 됐으니 전쟁으로 치면 적장을 아군의 장수로 만들어 적을 치는 전술이 막대한 기여를 한 것이다.
© 오비맥주 제공


맥주시장 점유율로 보면 오비가 진로에서 인수한 카스맥주의 시장점유율 46.7%에 힘입어 오비맥주가 역전에 성공했지만 브랜드 싸움에서는 아직 하이트진로와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오비맥주는 1980년 오비맥주의 역사를 계승한 'OB골든라거'를 2011년 3월 출시했다. 시장점유율은 3.4%로 초라하다. 지금의 하이트진로를 있게 한 역사의 산실 '하이트맥주' 점유율은 33.7%로 기업의 정통성을 계승한 브랜드 싸움에서는 하이트진로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오비맥주는 1998년, 오비맥주를 소유하고 있던 두산그룹이 벨기에 인터브루(Interbrew Corporate-세계 최대의 양조업체인 '앤호이저부시 인베브'의 전신으로 1988년 당시 벨기에 1, 2위 맥주회사인 아르토아(Artois)와 피드뵈프(Piedboeuf)가 합병해 설립했으며, 2004년에 브라질의 주류 회사 암베브(AmBev)와 합병해 주류 회사 인베브(InBev)를 설립했다-)와 합작 후 2001년 구조조정으로 인터브루로 주인이 바뀐데 이어 2009년 7월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로 또 한 번 최대주주가 변경됐다.

KKR은 미국 사모펀드사로 우리나라에서 맥주회사를 계속 경영할 이유가 없다. 2014년까지는 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새로운 인수자가 되건 위기와 기회가 같이 올 것이고 결과적으로 오비맥주와 하이트 하이트와 오비맥주의 맥주전쟁은 또 한 번 일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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