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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 실시 첫해 "절반의 성공"

제도적 완결성에도 '시의회와 소통부족' '심사 부족' 문제로

(서울=뉴스1) 박태정 기자 | 2012-12-13 21:01 송고 | 2012-12-13 23:15 최종수정
지난 7월 14일 서울 서초동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주민참여예산제 위원회 위원 위촉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위원들과 예산편성을 마른수건도 짜낸다는 각오로 하겠다는 의미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 © News1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 예비 심사과정에서 절반 가까이 삭감되며 논란이 컸던 주민참여예산이 우여곡절 끝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본심사에서 상당수 사업이 되살아나면서 13일 최종 확정됐다.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가 올해 처음 시행되면서 거치는 시행착오라는 측면도 있지만 시의회의 예산 심사권한과 대치하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해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3일 제 243회 시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서울시가 제출한 억원의 2013년도 예산안 가운데 120개 사업 470억700만원의 주민참여예산이 최종 의결됐다.

당초 시는 132개 사업, 499억4200만원의 주민참여예산안을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했지만 상임위원회 예비심사 과정에서 54개 사업(199억3500만원)이 전액 삭감되거나 일부 감액됐다.
이에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심사하고 투표를 통해 선정한 주민참여예산위원회는 "사업 선정에 참여한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재심의해야 한다"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시의회는 "주민참여예산위원이나 시민단체가 일방적으로 시의회를 비난하는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예결특위를 통해서 다시 한번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일수 수용입장을 보였다.

결국 주민참여예산안은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본심사를 과정에서 대다수 사업들이 복구되며 폐기 위기에서 기사회생했다.

◇시의회 "사업 타당성·지역 형평성" 지적

그러나 삭감된 주민참여예산이 우여곡절 끝에 되살아나기까지 처음 시도되는 주민참여예산제도와 시의회의 구조적 마찰이 적지 않았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주민참여예산을 심사·선정하면서 조례에서 정한 절차를 빠짐없이 거치며 형식적으로 문제는 없었지만 시의회 심사과정에서 조정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관호 주민참여예산위원장은 "250명의 주민들이 주민참여예산제의 근본 취지에 동의해 일주일에 3~4번 모여서 논의하고 공모로 제안받은 사업을 심사하고 직접 투표를 통해 선정했는데도 주민자치와 참여의지가 무색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주민참여예산은 시민들이 직접 제안한 402개 사업 중 분과위 심사를 거쳐 중복되거나 이미 시행 중인 것을 빼고 240개를 선별한 뒤 9월 1일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주민참여예산 한마당을 통해 공개하고 결정한 사업들이다.

그렇지만 시의회는 주민참여예산 선정 과정이 예산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김선갑 시의회 예결위원장은 "주민참여예산이 시대적 흐름인 것은 맞고 주민참여예산제의 취지는 최대한 존중하지만 의회의 예산심의권 역시 침해받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예비심사 과정에서의 삭감 폭이 예상보다 크게 나타나 서울시와 주민참여예산위원회를 당혹스럽게 했다.

29개 사업 가운데 25개 사업을 삭감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예비심사에서는 '다문화도서관 건립', '책마을 조성', '숲속 버스도서관 조성' 같은 도서관 사업이 대부분 사라졌다.

예비심사에 참가했던 김용석 의원(새누리당·서초4)은 "도서관 사업은 한번 만들어지면 지속되어야 하는 계속사업이라 작은 도서관 하나 짓는데도 연구용역을 하고 몇 년씩 타당성 조사를 한다"며 "주민참여예산이라고 무작정 편성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대신 문광위는 삭감한 도서관 예산만큼 작은도서관 육성지원 예산으로 22억5000만원을 증액했다. 또 '사회적 배려계층을 위한 이동편의 확보' '창동문화체육센터 장애인편의시설 확충' 같은 예산은 살아남았다.

예비심사에서 전액 삭감됐던 10개의 작은 도서관 건립 예산은 주민참여예산이 아닌 서울시 포괄사업비로 조정돼 모두 되살아났다.

보건복지위원회의 경우 결국 대부분 되살아나긴 했지만 예비심사 과정에서 34개 주민참여예산 사업 가운데 19개가 전액삭감, 3개는 감액됐다.

'경로당 재건축' '자동제세동기 설치' '하천변 해충퇴치기 설치' '한부모가정 이해교육강사 양성교육' '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 설치' '지역아동센터 설치' 등이 지역간 형평성과 기존 프로그램과 시설이 있다는 이유로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두 상임위를 제외한 나머지 상임위에서는 일부 금액 조정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민참여예산안이 받아들여져 대조를 이뤘다.

◇"시의회, 심사 기준 제각각…끼워넣기 무사통과"

이를 두고 상임위별로 주민참여예산에 대한 심사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참여예산은 성격상 지역 사업 위주로 편성될 수밖에 없는데도 상임위별로 수용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민참여예산에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시의원이 끼워넣기 식으로 새로 만드는 지역사업은 지역 형평성이라는 그물망을 손쉽게 통과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실제 상임위 예산 심사 과정에서 풀씨넷 등 일부 시민단체들은 "도시교통본부, 문화관광디자인본부, 푸른도시국, 주택정책실, 한강사업본부 예산에 대한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 반영된 사업 개수만 71개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서 투표를 통해 정한 순위가 시의회 심의 과정에서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135개의 주민참여예산 10위권 사업 13개 가운데 4개가 전액삭감되고 3개가 부분 감액돼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황도연 주민참여예산 위원은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줄이더라도 예산의 상한을 정해 당초 시민투표를 통해 결정된 사업 순위에 맞춰 후순위 사업을 삭감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이는 주민참여예산제의 기본 골격을 상실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반면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주민참여예산위원회 활동이 다소 형식적이었고 제대로된 심사가 이뤄질 수 없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참여예산 위원은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시민들이 모이다 보니 퇴근 후 오후 시간에 만나 심사를 해야했고 시간이 모자라 사업 하나당 1분도 안 되는 설명을 듣고나서 판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5월 조례가 재정돼 주민참여예산 위원 선정과정을 거쳐 7월에서야 본격적인 예산 심의가 이뤄지다보니 단 2개월 동안 시민 제안사업을 심사하고 결정해야 했다.

조례 이후 일정이 촉박해 위원들 사이에서 "일정에 끌려갔다"는 느낌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게 참여 위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또한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장을 뽑는 과정에서도 위원회 내에서 대표성 문제로 잡음이 일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여예산위원회의 실질적인 운영을 도왔던 서울시의 경우 예산담당부서에만 관련 업무가 집중돼 실제 주민제안 사업의 타당성을 담당부서에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관련 부서가 세심하게 살폈더라면 시의회 심사과정에서 국비매칭사업이라 사업이 전액 삭감되는 사태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예산위·시의회 '소통부족' 인정…제도개선 필요

그럼에도 처음 시도된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평가는 후한 편이다. 일단 전국 광역지자체 가운데 가장 늦게 조례가 재정됐지만 내용면에서는 가장 완결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주민참여예산제를 장기간 연구하고 있는 유소영 여성정치세력화민주연대 활동가는 "서울시 전체 예산을 범위로 하고 시장의 총회 참석을 의무화한 것은 재정 민주주의가 투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실제 주민참여예산으로 500억원을 실제 결정할 권한을 부여하고 일반 시민응모를 받아 성별과 연령별로 공개 무작위 추첨해 위원을 위촉했다는 점에서 실효성과 주민 대표성을 높였다"고 칭찬했다.

다만 주민참여예산위원회와 시의회의 소통 과정이 부족했다는 점은 양측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예결특위 위원으로 주민참여예산 조례 재정을 주도했던 서윤기 의원(민주통합당·관악2)은 "주민참여예산제가 처음 도입된 것이다 보니 시민 위원들에게 사전에 충분한 설명과 정보가 제공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고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지금이라도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참여예산지원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손종필 서울 풀시넷 예산위원장은 "시의회와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충돌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생산적인 논의가 계속되야 하며 내년에는 일찍 예산 편성에 들어갈 수 있는 만큼 갈등은 최종 심의 전에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한 서울시 예산담당과장은 "거대도시 서울시에서 주민참여예산제가 시행되는데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냐"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좀더 완벽한 제도로 정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제도적 개선 필요성도 제기된다. 유소영 활동가는 "자치구 사업이 아닌 서울시 광역사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광역사업의 경우 가산점을 부여하거나 해당 국·실의 지원의무 등 제도보완을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pt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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