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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서민경제] (1) "창업성공은 커녕 쪽박차기 일쑤"...자영업자 비상구가 없다

(서울=뉴스1) 방혜정 기자 | 2012-08-26 03:02 송고 | 2012-08-26 12:03 최종수정
편집자주 유럽발 세계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이후 최대 시련을 겪고 있다. 늘 그러하듯 경제가 어려우면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중산층을 포함한 서민들이다. 불황의 그늘에 드리워진 2012년 하반기 대한민국 서민층의 어두운 자화상을 조명해 보는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23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열린 A사의 창업 설명회장에는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50여명의 참가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 News1


지난 23일 오후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한 유명 프랜차이즈 회사의 창업설명회장.
화장품과 건강보조식품 가맹점을 모집하는 행사장은 밀려드는 참가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이날 설명회에는 예비 가맹점주들에게 창업정보는 물론 실제 점포를 열 경우 하루벌이는 얼마나 되는지 또 본사차원의 지원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업체 강사진들의 특강이 펼쳐졌다.

자리를 꽉 메운 50여명의 참가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강의내용을 메모하거나 회사 팜플렛을 살펴보는등 설명회장의 열기는 바깥 날씨만큼 후끈 달아올랐다.
눈길을 끈 것은 참가자들의 연령대. 50대이상의 장년층과 20대 청년들의 참가자 양극화 현상이 빚어진 점이 이채로웠다.

직장에서 쫒겨났거나 은퇴한 장년층과 아예 취업이 안되는 청년층이 탈출구로 생계형 창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지방에서 상경했다는 금창호씨(가명 58)는 "독창적인 사업을 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며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유명회사 창업설명회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장사아이템상 주로 20~30대 여성 고객들이 많은 것이 부담이 되지 않는냐는 질문엔 "가게만 내면 회사에서 알아서 잘 팔리는 물건을 대주니깐 문제없을 것 같다“ 는 순진한(?) 답변을 내놓았다.

아빠의 손을 이끌고 행사장 문을 두드렸다는 양지연씨(가명 27·여)는 "대학 졸업후 몇년째 놀고 있는데다 아빠까지 최근 직장을 잃어 가족회의끝에 가게를 열기로 했다“며 참가이유를 설명했다.

각종 언론보도로 요즘 뜨고 있는 이 회사의 가맹점을 꿰찰려면 임차보증금은 물론 가맹비다 인테리어비다 해서 최소한 2억은 투자해야 한다.

퇴직금이나 적금등 평생 모은 종잣돈을 모두 쏟아부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창업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사상유례없는 장기불황에다 거의 모든 자영업종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신설법인수는 7127개로 월별 기준으로는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말이 법인이지 내막은 대부분 종업원 5명이하의 점포가 대부분으로, 먹고살기 위해 장사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묻지마식 프랜차이즈 육성정책도 자영업자 증가를 부풀리는 요인이다.

2009년 9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자영업자 경쟁력 강화를 위한 프랜차이즈 산업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당시 정부관계자는 “자영업자를 조직화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가맹점 1000개 이상의 대형 프랜차이즈를 10개 수준에서 2012년까지 100개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자연스레 자영업자 '대량 생산'을 부추기며 업종별·점포간 무한대 출혈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09년까지 10년동안, 연평균 76만6000개 업체가 탄생한 반면 비슷한 규모인 75만2000업체가 같은해 곧바로 퇴출당했다.

이 중 종업원 5인 미만의 영세사업체가 1년동안 생존할 가능성은 65~75%였다.

영세 자영업체 3곳 중 1곳은 1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실제 뉴스1의 취재결과 현장의 '자영업 몰락' 사례는 부지기수였다.

서울 강북에서 지난해 식당을 오픈한 정현숙(가명 49·여)씨.

손님들에게 하루하루 음식을 팔아가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온 정씨는 요즘들어 장사를 시작한 것이 일생일대의 실수가 아닌가하는 고민속에 빠져들었다.

치솟는 식재료값 탓에 올초부터 적자 가계부를 써온 정씨는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가게를 '눈물의' 헐값에 내놓았다.

정씨는 "월 매출 300만원인데 쌓이는 빚은 많아지고 장사는 점점 하기 힘들어져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기업에서 차장까지 지낸뒤 몇년전부터 인천 부평지역에서 가게를 시작한 김재헌씨(가명 52)는 "자영업은 자율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수입도 원하는 만큼 벌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막상 자영업을 해 보니 거의 적자"라며 "동네 슈퍼마켓에서 음식점으로 업종을 갈아타는 동안 수입은 반토막나면서 대출금만 쌓였다"고 고개를 저었다.

김씨가 빚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은 재산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는 아파트 평수를 낮춰 이사하고 차도 팔아치우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가족 생계를 위한 사실상 마지막 보루인 장사마저 공치게 되면서 빚에 쪼달린 자영업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대출문을 노크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규모는 지난 6월 기준 109조3227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전 대출잔액인 96조297억원보다 13.8%, 13조2930억원이 늘었다.

지난 5월 자영업자가 584만6000명인 점을 감안하면 자영업자 1명당 5대 시중은행에서만 1870만원씩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득 대비 금융부채는 일반 직장인이 78.9%인 반면 자영업자는 159.2%에 달한다. 50대 이상 자영업자 대출은 17.5% 급증했다

여러 금융회사에 빚을 지고 있는 다중 채무자 가운데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50%를 넘어섰고 5월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17%로 지난해말 0.8%에 비해 크게 치솟았다.

중산층이 도피처 내지 비상구로 삼았던 자영업에서도 실패하면서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개인회생이란 빚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개인이 법원이 마련한 계획에 따라 부채를 청산하는 절차를 말한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올들어 6월까지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1만80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벼랑끝에 내몰린 한국 자영업자들의 탈출구가 완전 봉쇄된 것이다.

이재형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위원은 "영세사업자들은 수입이 절대적으로 적은데다 수입 증가율도 물가는 물론 국민소득 수준에도 못미치면서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그저그런 수입에 쪽박의 두려움까지 안고 살아가는게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현주소이다.


bhj260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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