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사단(이사장 반재철)이 그동안 '작자 미상' 상태였던 애국가의 작사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또 익명으로 애국가 보급에 앞장섰던 도산이 애국가를 작사했다고 스스로 증언한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흥사단은 2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애국가 작사자 규명 발표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발표회는 박만규 전남대 교수의 사회로 안용환 명지대 교수, 오동춘 박사의 발제와 정인교 서울신학대 교수, 정영모 민족문화연구가의 토론 등으로 진행됐다.
안용환 교수는 윤치호의 친일행각, 찬미가 '역술(譯述)' 문제, 일기 내용을 들어 애국가는 윤치호가 작사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윤치호는 임종 직전인 1945년 개성에서 육필(肉筆)로 쓴 '애국가 가사'를 1907년 작으로 위증하고 철자법도 현대적으로 바꿨다"며 "이 자료는 광복 이후 국사편찬위원회가 애국가 작사자를 조사할 때도 증거자료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윤치호의 애국가 작사 가능성을 부정했다.
안 교수는 이밖에도 대한매일신보 등 다양한 언론보도와 저명인사의 도서 내용을 토대로 도산이 애국가를 작사했다고 설명했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3월 20일자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안창호 씨가 서서 만리현에 있는 의무균명학교 학생들에게 월요일부터 조회 때마다 미국 선진국에서 본받은 것처럼 국기에 경례하고 자신이 지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를 화창했다"고 써있다.
애국가작사자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오동춘 박사는 "윤치호 자필 애국가 가사지가 들어있는 '찬미가'는 저작이 아니라 역술"이라며 "윤치호는 어린 시절 일본 유학을 떠나 일본문화에 친숙해 역술이란 단어를 몰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사편찬위원회가 1955년 애국가 작사자를 조사한 바 있는데 이 시기는 친일파가 득세하던 시절"이라며 "안창호 선생이 애국가 작사자가 되는 것에 친일파 계열 조사위원의 방해를 받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오 위원장은 또 "선천예배당의 김정수 권사와 숨은 독립운동가 윤형갑 선생, 도산 비서실장 구익균 선생(105)의 증언으로 도산이 애국가 작사자라는 것이 밝혀졌다"며 "정부는 모든 음악교과서에 애국가 작사자는 도산 안창호라고 속히 밝혀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흥사단은 지난 19일 "도산이 1907년 3월 평안남도 선천예배당에서 애국가를 작사했다는 사실을 여러 증언과 자료로 확인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상해 임시정부 시절 3년 동안 도산의 비서를 맡았던 구익균옹이 올해 2월 "당시 애국가 작사자에 대해 도산에게 질문하자 '맞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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