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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무능'축구협회, 플랜 B도 없었던 예고된 참사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2014-07-10 10:05 송고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10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대한축구협회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갖기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홍 감독은 이 자리에서 "오늘 책임지고 대표팀 감독자리를 떠나겠다. 앞으로도 좀 더 발전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14.7.10/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45)이 10일 전격 사퇴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뒀던 홍 감독으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그 동안 대한축구협회가 벌인 행보를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근시안적인 행정으로 인한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홍 감독은 지난달 30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힘든 결정을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며 사실상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협회는 3일 허정무 부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홍 감독은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산이다. 내년 1월 아시안컵까지 다시 한번 기회를 줄 것이다”라며 유임 결정을 밝혔다. 허 부회장은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협회의 무리수로 인해 안 그래도 월드컵 부진으로 인해 좋지 않았던 여론은 극도로 나빠졌다.

답답한 것은 협회가 홍 감독의 자진 사퇴 의사를 2차례나 만류했다는 사실이다. 책임을 생각하는 대신 협회는 홍 감독을 감싸기에 급급했다. 홍 감독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이미 알제리전이 끝난 뒤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직접 홍 감독을 만나 사퇴를 말렸다. 왜냐하면 협회로서는 월드컵 부진에 대비한 플랜 B가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초 협회는 지난해 6월 홍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길 당시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계약을 할 계획이었다.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23세 이하 올림픽 대표팀을 거쳐 성인 대표팀 감독을 맡기까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협회의 홍 감독에 대한 맹신이 화를 불렀다. 선수 시절부터 줄곧 승승장구했던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에서 실패할 것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이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고 돌아온 홍 감독은 당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고 협회는 지난해 5월 최강희 전 감독이 물러나자 홍 감독을 부랴부랴 사령탑에 앉혔다.

그러나 홍 감독은 협회의 예상과 달리 대표팀 엔트리 구성 과정부터 잡음이 일었다. 소속팀에서 거의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박주영과 윤석영(퀸즈파크 레인저스)이 최종 명단에 포함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때마다 협회는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홍 감독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형식적인 말만 반복했다.

이후 월드컵에서 1무2패라는 성적을 거두고 돌아왔지만 협회는 여전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무책임하게 홍 감독 뒤에 숨었다.

오히려 이로 인해 홍 감독이 명예롭게 퇴진할 기회조차 뺏어 버렸다. 만약 협회의 앞선 발표대로 내년 1월까지 홍 감독이 재신임을 받는다고 해도 이미 홍 감독의 입지는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태였다. 한 지도자는 유임 결정 이후 “이제 매 경기마다 홍 감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홍 감독이 이전보다 더 힘들 것이다”고 우려했다.

설상가상 지난 7일 한 언론에서 홍 감독이 대표팀 소집 당시 토지 구매 의혹까지 제기하면서 홍 감독은 축구 외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 뒤늦게 사퇴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여론은 홍 감독에게 등을 돌린 상태였다.

협회는 유임 결정 이후 비난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부랴부랴 10일 홍 감독의 사퇴 기자회견이 끝난 뒤 정몽규 회장이 나서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지난 3일 “홍명보 감독을 믿어 달라”고 호소했던 허정무 부회장은 불과 일주일 만에 쓸쓸하게 동반 사퇴를 해야 했다.

앞으로 협회가 갈 길은 멀다. 대한축구협회의 수장인 정몽규 회장은 “대표팀의 부진에 대해 누구보다 책임을 통감한다. 이를 거울삼아 대한민국 축구는 더 큰 도약을 향한 준비를 하겠다. 팬들의 질타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각급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기술위원회 대폭 개편 등 쇄신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더 이상 말뿐인 약속이 돼서는 안 된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장기적인 플랜을 짜야 한다. 이번 홍명보 감독 사퇴를 보면서 많은 팬들은 이미 협회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한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가 않다. 정 회장이 약속했던 것처럼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달라진 협회’가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alexe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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