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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마포구에 세월호 추모 현수막…구청 철거 논란

주민들 자발적으로 합정역~마포구청에 '노랑 현수막' 달아
실명 적고 '세월호참사'에 대한 반성·질책·변화 염원 담아
마포구청 "정치적인 내용 담겼다" 이유로 현수막 절반 떼

(서울=뉴스1) 박현우 기자 | 2014-05-01 20:59 송고 | 2014-05-01 22:21 최종수정
서울 마포구 망원역~마포구청 거리에 걸려있는 현수막. 총 68개가 걸렸지만 36개만 남아있다. 마포구청은 '정치적인 내용이 담겼다'며 현수막 일부를 뗀 것으로 알려졌다.© News1

"형과 누나들이 가족의 품으로 하루 빨리 돌아오기를 두손 모아 기도드립니다(신북초고 5학년 이찬영)"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역과 마포구청 사이를 바삐 걸어가는 시민들 사이로 '노랑 물결'이 일렁였다.

'세월호참사' 실종자들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노란 리본'을 연상시키는 노란 현수막에는 실종·희생자들을 지켜주지 못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침몰 직후 적절하지 못했던 초기 대응과 유족을 만난 자리 등에서 정부 관료들이 보인 부적절하고 진정성 없는 행동들에 대한 질타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내용도 눈에 띄었다.
"아이를 살려 달라고 어머니가 무릎을 꿇는 나라가 아닌, 꼭 구해내겠다며 대통령이 무릎을 꿇는 그런 대한민국을 소망한다(유의선)."

가로 80㎝, 세로 150㎝ 크기의 현수막에는 어딘가로는 발산돼야 할, '세월호참사'로 함께 상처받은 시민들의 정부와 기성세대,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질책이 담겼다.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담아내자는 의미로 하단에는 글쓴이의 실명을 담았다.

해당 이벤트는 마포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 시민단체 대표가 고안했다.

정경섭(43) '민중의 집' 대표는 '세월호참사'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희생자들을 잘 보내고 가슴에 묻는 동시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억울하고 부끄럽고 분한 마음들을 해소할 수 있는 통로도 필요했다. 정 대표는 마포구 관내 공동육아협동조합 학부모들, 생활협동조합 조합원들, 전통시장상인들과 머리를 맞대 합정역~마포구청 사이를 '애도의 거리'로 지정하고 '노랑 현수막'을 걸기로 했다.

현수막은 평범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였고 이런 목소리들이 모이면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어떻게 변화시켜가야할지에 대한 방향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주민 100여명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현수막 하나당 1만원씩 제작비도 입금받아 현수막 70여개를 제작해 30일 밤 10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합정역~마포구청 사이 거리에 직접 걸었다.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자신이 쓴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을 직접 걸었다.
서울 마포구 망원역~마포구청 거리에 걸려있는 현수막. 총 68개가 걸렸지만 36개만 남아있다. 마포구청은 '정치적인 내용이 담겼다'며 현수막 일부를 뗀 것으로 알려졌다 © News1

현수막이 차도에서 잘 보이게 걸려 있어 거리를 걸어서 지나는 시민들 중 현수막이 걸려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지만 현수막을 본 시민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정은지(25·여)씨는 "전혀 거추장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내용들이 공감이 된다"며 "언론, 정치권에서 하는 말을 국민들은 대부분 듣기만 하는 입장인데 자발적으로 국민이 하고 싶은 말을 직접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주민 김모(44)씨는 "(내용들을)전적으로 동감한다"며 "조금 더 (이런 활동을)해도 된다. 용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중학생 송윤재(15)군도 "형과 누나들이 너무 불쌍하다"며 "참여 방법을 안다면 나도 동참하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해당 거리에 있는 치킨집 야외 테이블에서 직장 동료와 맥주를 마시던 황우식(44)씨는 "힘이 없는 사람들 목소리를 반영하는 통로이자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자발적으로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며 "불법현수막일 수도 있는데 철거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황씨 바람과는 달리 이 거리에 붙어 있던 현수막 중 절반은 마포구청에서 이미 수거를 해간 상태였다.

당초 현수막 68개가 해당 거리에 걸려있었는데 오후 9시 해당 거리에 걸린 현수막 수를 세어보니 36개에 불과했다.

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마포구청에서 정치적인 내용이 담겼다는 이유로 현수막을 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마포구청 측에 해명을 듣고자 오후 6시30분에 전화를 걸었지만 구청 관계자는 "긴급한 사안도 아니고 담당자가 퇴근을 했으니 연결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이후에도 여러 관계자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이렇다할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경섭 대표는 "정치적인 이야기들이라기 보다는 초등학생, 중학생, 주민들의 세상을 향한 절규이자 정치권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이다"며 "이런 걸 무차별적으로 막는 건 옳지 못하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정 대표는 "현재 현수막을 제작해 걸겠다는 주민들이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해오고 있다"며 "추모행사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hw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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