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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명 인명피해도 없게 하라"…30분후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시간대별 재구성] 출항부터 침몰까지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2014-04-24 00:15 송고 | 2014-04-24 07:50 최종수정
편집자주 세월호 침몰 사고가 24일로 9일째를 맞는다. 그동안 구조작업은 지지부진했으나 합동수사본부와 해양수산부 등의 조사 결과 세월호 비극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세월호의 출항부터 침몰까지 과정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해본다.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 중인 세월호는 인천과 제주도를 주 3회 왕복하는 정원 912명(6825톤급)의 여객선이다.세월호는 1994년 건조됐으며 인천과 제주를 주 3회 왕복하는 여객선이다. 전장 146m, 선폭 22m로 제주까지 운항시간은 13~14시간이다. 인천 출발시간은 오후 6시30분에서 7시이지만 15일 오후에는 서해상 짙은 안개로 2시간가량 늦은 오후 9시 출항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4.4.16/뉴스1 © News1 주영민 기자

15일 안산 단원고 2학년생 325명과 교사14명은 오후 4시30분 쯤 전세버스에 나눠타고 학교를 출발했다.18일 오후 4시 학교로 돌아오는 3박4일 일정의 제주도 수학여행 길이었다. 아무도 그길이 그렇게 먼 길일 줄 몰랐다.

인천항에 도착한 그들을 맞은 것은 자욱한 안개였다. 6시30분 출항 예정이던 세월호도 발이 묶였다. 대합실에는 "세월호가 11시 출항하니 희망하면 환불해주겠다"는 방송이 나왔다. 단원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안타까운 탄식이 터졌다. 저녁식사를 하고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삼삼오오 주변을 돌아다니며 기념사진을 찍고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배를 못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오후 8시30분쯤 되자 출항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출발한다며 신이 나 집에 전화를 거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배에 오르는 사이 세월호에는 차와 트럭들이 쉴 새없이 빨려들어갔다. 원래 기준보다 32대가 많은 180대의 차들이 실렸다. 50톤짜리 대형트레일러 3대도 끼어있었다. 화물은 총 657톤이었는데 500톤으로 거짓신고했다. 신고하지 않은 컨테이너도 갑판에 올라갔다. 마지막 차가 승선한지 3분만에 세월호는 출항했다. 규정보다 초과해 실은 화물과 자동차를 단단히 동여맬 시간도 없었다. 꾸역꾸역 들어차 허술하게 놓인 화물과 자동차들은 결국 세월호에 불길한 징조를 드리웠다.

육중해진 배는 오후 9시 인천항을 빠져나왔다. 세월호는 그날밤 인천에서 유일하게 출항한 배였다. 그날 결항되면 다음달 제주도에서 태워올 승객까지 포함해 이중으로 잃게 될 수익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여객선은 시계 1.0km 이하면 출항이 금지되지만, 이 시간대 쯤 안개가 걷혀 출항에는 원칙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단원고 학생이 70%가 넘는 승객 476명을 태운 대형여객선이 인천대교를 지날 즈음 밤하늘에 불꽃이 터졌다. 갑판에서 불꽃놀이를 하며 학생들은 곧 만날 제주도를 꿈꾸고 있었다.
16일 오전 8시58분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 해상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되고 있다는 신고가 해경에 접수됐다. . © News1 김한식 기자

이튿날인 16일 오전 8시쯤, 세월호 조타실에 이준석 선장(69)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3등 항해사인 박모씨(25)가 항해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항해사 경력 1년, 세월호를 탄 지 이제 4개월된 초보였다. 옆에는 조타수인 조모씨(55)가 있었다. 그 역시 이 배 운항 경력은 6개월 남짓이었다. 당시 세월호는 7시30분부터 시속 21노트(39km)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이 배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였다. 생존한 학생들은 이때부터 배가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전날 지각 출항의 부담을 안고 12시까지 제주항에 들어가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던 세월호는 8시29분 국내 해역에서 두번째로 물살이 세다는 맹골수도에 들어섰다. 맹골수도에서 항해를 지휘하기는 처음인 항해사 박씨는 19노트 정도로 속도를 늦췄다. 하지만 보통 배들이 위험지역인 맹골수도을 지날 때 유지하는 16~18노트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강한 조류를 맹렬히 가르던 세월호는 더욱 휘청댔다. 균형을 잡기 위해 몇차례 변침을 시도했다.

제주도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 병풍도를 옆에 낀 지점에 도달한 8시48분37초 쯤 세월호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36초간의 정전이 일어났다. 해양수산부가 공개한 항적도에 따르면 정전 당시 AIS(자동식별장치) 신호는 갑자기 멈췄다 8시49분13초에 살아났다. 이때 속도가 15노트로 크게 줄어들면서 오른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 포착된 세월호는 8시 49분 36초 쯤 급격하게 변침하기 시작했다. 이 때가 세월호는 무게중심을 잃고 급격히 왼쪽으로 기운 이른바 '외방경사'가 일어난 시점으로 추정된다. 오전 8시49분 56초에는 이미 선체가 45도 가량 기울며 침몰하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아침을 맞던 학생들과 승객들도 엄청난 충격에 동요하기 시작했다. 8시52분32초, 전남소방본부 119센터에는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살려주세요. 여기 제주도 가는 배인데 침몰하는 것 같아요."

한 단원고 남학생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세월호가 조난중이라는 최초 신고였다. 어른인 선원보다 앞서 어린 학생이 신고한 것이다.119센터는 8시 54분 7초에 전화를 목포해경으로 연결해 38초쯤 3자 통화가 시작됐다. 신고자를 선원으로 잘못 안 해경이 "위도와 경도를 알려달라"고 묻는 사이 천금같은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배 이름이 뭡니까." "세월호요, 세월호." 해경 경비정이 출동한 것은 신고한지 4분25초가 지체된 8시 56분 57초였다.

학생의 신고보다 뒤늦은 8시55분 조타실에서는 제주관제센터(VTS)와 먼저 교신이 시작됐다. "해경에 연락해주세요.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갑니다." 주변을 지나는 배들을 구조를 위해 불러모은 제주관제센터는 "인명들 구명조끼 착용하시고 퇴선할지도 모르니까 준비 좀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이때쯤부터 선내에는 "위험하니 선내에서 이동하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승객들은 공포에 떨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세월호가 진도관제센터와 연결된 것은 9시 7분이었다. 진도관제센터는 9시12분 "승선원들이 라이프래프트나 구조보트에 타고 있느냐"고 물었다. 항해사는 "배가 기울어 이동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관제센터는 24분 "라이프팅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십시오. 빨리"라고 다그쳤다.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 474여명이 탄 여객선이 진도 해상서 좌초돼 해경이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16일 오전 8시 58분께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 중이던 6천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좌초돼 해경이 긴급 구조에 나섰다. 현재 선체가 90% 이상 기울어 해경은 헬기와 인근 상선 3척, 경비정 등을 동원해 인명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배에는 3박 4일 일정의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등 모두 474명이 탔으며 차량 150여대도 싣고 있었다. 이 배는 15일 오후 9시께 인천여객터미널을 출항해 제주로 향하는 길이었다.(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2014.4.16/뉴스1 © News1 김보영

이렇게 승객들이 무방비 상태에 놓인 채 해경 헬기와 해경구조정이 도착한 것은 9시30분 경. 배는 이미 50~60도까지 쏠려 침몰하고 있었다. 세월호는 "배가 60도 정도 좌현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고 지금 헬기까지 다 떴습니다"는 교신을 마지막으로 관제센터의 연결에 응하지 않았다. 이때가 9시37분으로, 선장 등 선원들이 탈출을 시작한 시간으로 추정된다.

세월호 학생들과 승객들이 목숨을 건 시간을 보낼 무렵 정부는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전 8시58분 목포 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사고가 접수되면서 해양경찰청 구조본부가 가동됐다. 9시 40분쯤 해양수산부 중앙사고수습본부, 5분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구성됐다. 9시31분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세월호 침몰 사실이 보고됐다.

오전 10시 박근혜 대통령은 "단 1명의 인명피해도 없도록 하라"고 중대본에 공개 지시했다. 그로부터 30분뒤, 세월호는 완전히 뒤집힌 채 뱃머리만 남기고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배 안에는 수많은 꽃다운 학생들이 갇혀있었다.


nevermin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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