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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남의 불행에 투표 운운 WSJ, 正道인가

(서울=뉴스1) 허남영 기자 | 2014-04-22 16:40 송고 | 2014-04-22 21:52 최종수정



전남 진도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로 우리 국민은 쉽게 치유될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다. 대외적인 체면도 크게 깎였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가장 짧은 시간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한국민의 자부심은 어린 학생들을 지켜주지도 못했다는 자괴심으로 바뀌었다.

외신의 반응도 싸늘하다. 뉴욕타임스와 BBC 방송 등 해외 주요 매체들은 세월호 침몰사고를 비중있게 다루면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우리 정부의 안이한 대처 등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럴만도 하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수백명의 고교생을 침몰하는 배에 남겨둔 채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은 제 목숨 살자고 도주를 했고 사고 발생 직후 정부가 보여준 우왕좌왕 대처는 우리가 기대했던 정부와는 분명 거리가 멀었다.

피해자 숫자는 몇차례나 바뀌었고 현장을 지휘할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구조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세월호 침몰은 불합리한 증축, 과다한 화물적재, 이런 과정에서 벌어졌을 불법 의혹들로 점철됐다는 것이 점차 확연해지고 있다.
이에 외신의 따끔한 충고는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본다. 또한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후속대책을 마련하고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하지만 외신의 지적도 보편타당해야 하고 상식적인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수백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다른 나라 재난사고 소식을 다룰 때에는 상대국의 국민 정서도 잘 헤아려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현지시간) 온라인판에 게재한 기사는 아쉽고도 씁쓸하다.

WSJ는 이날 '박 대통령, 선원들 비판 옳았는가'라는 제하의 기사와 함께 이에 대한 찬반을 묻는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월호의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를 "살인과도 같은 행태"에 비유한 발언을 문제삼은 것이다.

WSJ의 이날 기사는 균형감을 잃었다고 본다.

WSJ는 "박 대통령은 선장과 승무원에 대한 국민적 악감정을 반영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부의 위기대처능력 부족에 대한 비난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온라인 상에서 번져가고 있다"고 했다.

WSJ는 또 한국 전문가인 에이단 포스터 카터의 말을 인용해 "박 대통령이 세월호 승무원들을 살인자라 규정함으로써 미리 판결을 내린 것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6·4지방선거가 두려워서인가?'라고 논평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이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에 대해 유죄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WSJ의 주장은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폄훼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의 재판관들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죄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또한 박 대통령의 발언은 침몰을 낳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의 불합리와 불법, 안전불감증 등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의 잘못이 크다는 점을 거론하는 맥락에서 나왔다는 점을 간과했다. 유독 '살인같은 행위'라는 발언에만 포커스를 맞춘 것은 분명 편향된 시각이었다.

우리 국민 전체가 어린 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뼈아픈 자책감에서 이번 참사를 보고 있다는 국가적 정서를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비록 수긍하기 힘든 기사이지만 기자의 시각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될수 밖에 없는 게 기사라는 점에서 기사 내용을 전적으로 배척하는 것도 온당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박 대통령의 '살인과도 같은 행태' 발언만 떼어내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한 대목이다.

WSJ는 기사를 통해 박 대통령의 발언에 문제가 있음을 이미 결론내렸다. 그러면서 진행하는 여론조사의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실제로 22일 오전까지 온라인 투표에 참여한 사람의 80% 이상이 '(박 대통령의 발언이) 옳지 못하다'고 했다.

여론조사 방법 자체가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세계적인 권위지가 남의 나라의 큰 불행을 자신들의 단편적인 잣대로 재려는 것은 오만이다. 한국과 동양의 정서를 전혀 헤아리지 않은 결과다. 권위지가 가야 할 정도(正道)가 아닌 것은 물론 스스로 격을 떨어뜨린 행태였다.


nyhu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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