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헛점 드러낸 재난관리체계..재난매뉴얼 3000건도 무용지물

[세월호 침몰] 재난관리매뉴얼, 전문가 없어 제 역할 못해
중대본, 전문가없이 고위관리직만...소통없이 '오락가락'
'생명' 촌각을 다투는데, 이틀만에 현지 대책본부 구성

(서울=뉴스1) 윤태형 기자 | 2014-04-19 19:59 송고

정홍원 국무총리가 18일 전남 진도군청 여객선 침몰사고 정부합동수습본부에서 각 부처 장·차관 및 관계자로부터 사고해역 현황과 구조상황 등을 점검하고 있다. 2014.4.18/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정부가 지난 17일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사고대책본부'를 설치한 것은 안전행정부에 맡겼던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 중심의 재난대응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범사고대책본부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아 직접 사고수습과 대책을 지휘하고 부본부장으로 해양수산부와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명했다.

안전행정부 장관이 맡고 있는 중대본은 그대로 유지키로 했으나 지휘체계가 전면 수정된 것이고, 2004년 재난 및 안전행정 기본법 개정 이래 지난 10년간 국가재난관리 컨트롤 타워를 맡았던 중대본은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셈이다.

지난 1990년 4월 당시 건설부 관할이었던 재난관리책임이 내무부(현 안전행정부)로 이전한 이후로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은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건, 성수대교붕괴, 1995년 대구 가스폭발사건, 삼풍아파트 붕괴, 1999년 씨랜드 화재사건,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등 대형 참사 등에 대응해왔다.
미국, 일본 등 재해관리 선진국으로부터 20년이란 짧은 기간에 선진국형 재해관리시스템을 완성했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지만 이번 세월호 사건엔 효과적인 대응을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의 통합적 국가위기관리체계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수립됐다. 당시는 NSC(국가안보회의)가 안보, 재난 등 4개 분야의 국가위기관리 매뉴얼을 총괄해왔다.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 NSC 사무처를 폐지해 비상임기구화하면서 안보 분야는 청와대가, 재난 분야는 당시 행정안전부가 맡도록 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과 함께 행정안전부는 안전행정부로 개명, 국가위기관리 콘트롤타워가 됐다.

지난 2009년에는 일본, 중국 등과의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인천 송도에 유엔 재해경감 국제전략 사무국(UN ISDR) 동북아사무소 유치에 성공하며 국제사회로 부터 동북아지역 자연 재해경감 활동 및 방재교육분야 선도국으로 인정받았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이번 '세월호'사건으로 그 색이 바랬다.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했다. 하지만 사고 4일째인 19일까지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사진=박준배 기자© News1 백승철 기자

◇3000건 넘는 재난관리매뉴얼, 전문가 부족으로 '서류상'으로만

지난 16일 청와대와 중대본은 국가재난관리매뉴얼에 따라 차분히 사고수습에 임하고 있다고 여러차례 발표했다.

하지만 3000건이 넘는 정부의 재난관리 표준매뉴얼마저 이를 관리하고 집행하는 재난전문가 부족으로 사실상 '문서상'으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조원철 연세대 방재안전관리연구센터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재해재난은 현장에서 우리 국민들이 죽고 사는 문제인데, 현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 지 정리가 안 돼 있다"면서 "분명히 매뉴얼이 있는데 문제는 그게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전문가가 없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현재 재난관리부서는 기피부서로 책임과 의무밖에 없어 재난전문가들이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라며 "재난관리를 하려면 이전에 발생한 재난의 진행, 발생과정, 속성을 잘 알아야 하는데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다 밀려나고 지금 행정가들이 재난관리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국가위기관리 콘트롤타워로 인정받아온 중대본 조차 해상사고 특성을 아는 전문가가 없어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경우도 중대본 내 재난관리 전문가가 현장과의 소통을 통해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해 해당 행정부처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하는 데, 수습 대책은 물론 사고현장 상황에 대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발표에 계속 혼선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서울에 있는 중대본에는 전부 고위관리만 모여 앉아있고 해상 사고 특성을 아는 전문가가 없어 혼란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당연히 현장 관리자와 소통이 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IT 강국, 탑승객 전산확인도 제대로 안해

정부는 또한 해상재난과 관련해 구조자는 물론 가장 기본적인 탑승객 인원 조차 사고발생 나흘째인 19일까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재난관리매뉴얼에 따르면, 인천항만청이 탑승객 명단을 정확히 파악해야할 책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본은 인천항만청에 탑승객 숫자를 확인해야하고 인천항만청은 이를 보고할 의무가 있음에도 정확성이 떨어져 CCTV로 인원수를 확인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전문가들은 항만청이 당초 여객기처럼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승선을 시켰다면 인원파악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요즘처럼 전산시스템이 갖춰진 시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지 개탄스러워했다.

◇현장과 괴리된 중앙집권화된 재난관리는 무용지물

현장과 동떨어진 중앙집권화된 재난관리체계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의 재난관리매뉴얼은 표준화된 평균치를 기준으로 작성된 것으로 평균치에서 벗어난 큰 재난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인명구조에 촉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최종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야 하는 데, 우리나라 재난관리 체계는 정부 중앙에서 모든 것을 지휘하는 구조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에 모두 230개 시군구가 있는데 시군구마다 특성이 다르다"면서 "더군다나 이번 사고의 경우 해역사고이기 때문에 중앙이 아닌 가장 잘 아는 목포지방해양경찰청이 컨트롤 타워를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목포지방해양경찰청이 모든 책임을 지고 권한도 가져야 하고 전 부처는 목포지방해양경찰청이 수습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이걸 법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데 현장이 직급이 낮으니까 소위 높은 분들은 말을 안 듣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어 "9·11 테러때 현장 총책임자가 뉴욕시장이 아니고 바로 국제무역센터 관할 소방서장이 현장 지휘관이고 뉴욕시장은 지원책임자로 연방정부 지원을 조정했다"면서 "그러려면 현장 책임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고, 각 중앙 관련부처는 지원하는 법적, 제도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birakoca@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