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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가' 학생 vs 주민…깊은 갈등의 골

학생 "과도한 주민 반대는 주거권 침해"
주민 "생존권 위협…대책 마련해 달라"
17일 열린 경희대 공공기숙사 공청회…끝내 파행

(서울=뉴스1) 최동순 기자 | 2014-04-17 14:29 송고 | 2014-04-18 07:25 최종수정
1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교에서 '대학생 공공 기숙사 건립사업' 공청회를 앞두고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기숙사 설립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News1 한재호 기자

서울의 한 대학가가 학생과 주민간 깊은 갈등의 골로 시끌벅적하다. 대학이 추진하는 '반값 기숙사'를 두고 서로 주장만을 내세우며 한치 양보도 없다.

요즘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로에 위치한 경희대학교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경희대가 추진하는 공공기숙사 사업에 대해 학생과 주민이 찬반으로 나눠져 극심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공기숙사 사업은 학생들에게 싼 값으로 기숙사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이 사업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 고전하고 있다.

학생들은 쌍수(雙手)를 들어 찬성하는 반면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로 인해 17일 오후 경희대에서 열린 주민공청회는 서로 감정의 골만 깊이 남긴 채 파행으로 끝났다.

◇"학생은 나가!" 고성 오간 공공기숙사 주민공청회

학생과 '하숙집 아줌마'의 갈등의 골은 예상보다 깊어 보였다.

17일 오후 2시쯤 경희대 청운관에서는 공공기숙사 건립과 관련해 의견수렴을 위한 주민공청회가 열렸다.

그러나 공청회는 참석 공술인(公述人)을 소개하기도 전에 고성이 오가기 시작해 65분간 내내 파행을 겪었다.

공청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학생대표가 왜 공술인으로 참가한 것이냐"며 "학교가 사업체니 학교 대표인 총장이 나와야 한다. 총장을 불러오라."고 주장했다.

한 주민은 "여기에 모두 학생들뿐이데 이게 무슨 주민공청회냐. 나가라."며 언성을 높였고 한 학생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 공청회인데 왜 나가라고 하느냐"고 맞섰다.

간간이 흥분한 주민들이 일어나 삿대질을 했고 학생들도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오후 2시45분쯤 성난 주민들 20여명이 한꺼번에 공청회를 거부하며 회의장을 퇴장했다.

주민 김모(67·여)씨는 "우리는 생존이 걸린 문제로 이 자리에 왔는데 우리가 흥분할수록 학생들이 깔깔대며 웃더라"며 얼굴을 붉혔다.

우모(62·여)씨는 "대학생들은 어차피 왔다가 가는 사람"이라면서 "이런 불경기에 지방사는 학생을 살리기 위해 지역주민을 죽이겠다는 것이 어디 말이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경희대 학생 양모(24·여)씨는 "어디 살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라면서 "주민들이 욕심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장현호(23) 교양학부 대학생위원회 위원장은 "현재 주거비로 인한 고통은 학생들이 다 짊어지고 있는데 주민들은 우리를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공기숙사가 건립되면 경희대 학생들은 한달 19만원으로 주거비용을 해결할 수 있다. 국민주택기금과 사학진흥기금에서 제공하는 장기·저리 대출을 통해 건설비용을 충당하기 때문이다.

경희대가 공공기숙사 대상 학교로 선정된 것은 기숙사 수용률이 낮기 때문이다. 경희대의 기숙사 입주인원은 1354명으로 전체 학생의 약 7.3%(2014년 1학기 기준)에 불과하다.

서울연구원이 2013년 5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대학의 평균 기숙사 수용률은 11.67%다.

경희대는 지난해 12월 건축부지를 마련하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며 난항을 겪고 있다.

학생들은 질 좋고 싼 주거공간을 사용할 권리를 주민들이 침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주민들은 새로운 기숙사가 들어오면 자취와 하숙으로 먹고사는 주민들이 그만큼 피해를 보니 어떻게든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맞선다.

◇"주거지 선택은 우리의 권리…자신 이익 때문에 주거권 침해 말아야"

대구가 고향인 신입생 이소연(19)양은 서울에서 맞은 새내기 생활이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며 입을 뗐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돼 큰 꿈을 품고 유학을 와서 현실에 부딪히게 됐다"며 "눈 앞에 과제와 시험이 쌓이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해 막상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나도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희대 주변의 방 시세는 보증금 500만~1000만원에 월세 45만~60만원이다. 집세와 공과금, 밥값 등만 하더라도 한달에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셈이다.

강필준(21) 자율전공학과 학생회장은 "대학생들은 등록금까지 포함해 1년에 2000만원을 쓰게 된다"면서 "연봉이 높은 직장에 간다고 하더라도 7~8년은 이 빚을 갚는데 써야 하는게 우리 세대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공기숙사는 학생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지원을 받게 된 사업인데 임대업 주민들의 반대에 가로막혀있다"면서 "빚을 지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싼 주거공간을 선택할 권리마저 없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고운(21) 호텔관광학과 학생회장은 "기숙사는 학내에 건설되는데 주민들이 자신의 이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구청에 민원을 넣어 방해하는 것은 학생들의 주거권과 행복추구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대학신문 '대학주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학생의 83.2%가 공공기숙사 건립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는 서울캠퍼스와 수원캠퍼스 학생 698명을 대상으로 3월18일에서 21일까지 3일간 이뤄졌다.

◇"우리의 적은 학교…학교는 대형 임대업자"

주민 은모(81)씨는 "절대 우리는 학생들과 다투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우리를 먹고 살게 해주는 고마운 분들"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너무 학교편만 들기 때문에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주민들이 불만을 품고 있는 대상은 학교라는 설명이다.

그는 학생을 고객, 학교와 자취 임대업자를 '대형마트'와 '골목가게' 등에 비유했다.

그는 "고객은 싼값의 물건을 선호하기 마련이지만 그 사이 골목가게는 말라죽기 마련"이라며 "주민들이 자본금이 많은 대학과 경쟁에서 어떻게 이기겠느냐"고 말했다.

김옥분(67·여)씨는 "우리는 하숙비 받아서 지하방에서 근근히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자꾸 우리보고 임대업자라고 한다"면서 "그렇게 따지면 기숙사가 3개나 있으면서 또 지으려는 대학교는 가장 큰 임대업자"라고 했다.
이어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같이 상생하자는 것"이라며 "정부나 학교에서 우리들을 위한 대책도 마련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청회에 주민대표로 참여한 공술인 한상도씨는 "우리도 학생들의 주거를 책임지고 있는데 정부가 대학측에만 특혜를 준다"면서 "정부가 저리·장기 대출을 해준다면 주민들도 얼마든지 싼 값에 학생들에게 방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광우 대학촌지역발전협의회 위원장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자취방을 대는 주민들은 대부분 은행에 융자를 받아 시세대로 월세를 받지 못하면 은행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남은 질의는 서면으로 진행"…미완으로 끝난 주민공청회
이날 공청회는 3시간20분만에 겨우 마무리가 됐지만 학교·학생 측과 주민들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주민들은 공공기숙사를 기존 설계대로 짓되 용도 변경 등을 통해 입실인원을 기존 926명에서 500명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광우 위원장은 "갑자기 900여명 학생들이 임대시장에서 빠져나간다면 주민들이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며 "연착륙을 위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와 학생 측은 기숙사에 경기지역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을 우선 배정하기 때문에 주민생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학교에 따르면 전체 재학생 중 24.3%가 경기도에 거주지를 두고 있고 신축된 공공기숙사 입실자의 약 58.3%가 경기지역 학생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박이랑 총학생회장은 "경기지역에 살던 학생들이 학교 기숙사를 이용하게 되면 동네상권이 더 활성화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석원 경희대학교 'Space21 건설사업단' 건설사업팀장은 "현재 경희대 주변은 전월세 매물이 적어 학생들이 주거공간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며 "900명 규모의 기숙사로 주민생계가 위협받는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는 끝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해 "추가 질의는 서면으로 진행한다"는 단서를 달고 끝났다.

이번 환경영향평가 초안에 대한 주민공청회 결과는 사업자 측에서 그 내용을 정리해 7일 후인 24일까지 동대문구청에 보고해야 한다.

이후 사업자 측이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환경영향평가 본안을 동대문구청에 접수하면 서울시 환경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환경영향평가 적정성 여부를 판단받게 된다.


doso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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