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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원 팔아 47원 남는다" 문닫는 주유소들

작년 주유소 310곳 폐업..."은행이자 내면 남는게 없다"
알뜰주유소 늘었지만 기름값 '고공행진'...원인은 '세금'
정유사업 '적자수렁'...소비자-주유소-정유사 모두 '한숨'

(서울=뉴스1) 최명용 기자 | 2014-02-13 22:29 송고 | 2014-02-14 02:23 최종수정
한국주유소협회가 12일 지난해 경영난으로 폐업한 주유소가 310곳이라고 발표했다. 연간 폐업 주유소는 2008년 101곳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2년 261곳으로 늘었고 작년 300곳을 돌파했다. 사진은 13일 서울시내 폐업한 한 주유소의 모습. 2014.2.13/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과거 주유소 사장은 '지역 유지'로 통했다. 부동산 부자에다 현금이 꼬박꼬박 들어와 '알부자'로 소문났다. 지역 행사마다 VIP 대접을 받으며 불려다녔다. 불과 10년 전이다.

주유소가 사라지고 있다. 폐업이 속출한다. 주유소 사장들은 주유소를 내놓고 있다. 주유소를 인수해 운영하려는 사람도 별로 없다. 임대 운영을 하겠다고 내주면 몰래 가짜 휘발유를 판다. 결국 영업정지를 당해 몇개월 은행 이자만 고스란히 갚아야 한다. 결국 폐업을 결정하고 사업을 접으려니 2~3억원이 드는 오염처리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은행 대출에 오염처리 비용을 내고나면 남는 게 없다. 빚이 더 많아 야반도주하는 경우도 있다.

시중 평균 휘발유값은 여전히 1900원대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휘발유값은 여전히 비싸다. 그렇게 비싸게 기름을 파는 데 주유소가 적자를 낸다니 이해가 안된다. 소비자는 비싸게 사는데 주유소 사장은 이윤을 못 얻어 폐업까지 한다. 정유업체들도 정제부문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 도대체 주유시장에서 사라진 이윤은 어디로 갔을까.

◇주유소 폐업 속출..1900원 팔아 47원 남겨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폐업한 주유소는 310개에 달했다. 폐업 주유소수는 지난 2008년 101개였으나 2009년 107개, 2010년 136개, 2011년 188개, 2012년 219개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영업 중인 주유소는 2008년 이후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말 기준 영업 주유소수는 1만2687개로 2008년 이후 최저다. 지난 2010년엔 1만3004개까지 늘어난 바 있다.

주유소들이 폐업에 나서는 것은 이윤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 주유소들이 얻는 이익률은 약 4% 정도로 추산된다. 1리터당 1900원에 휘발유를 팔면 76원 정도 남는다. 여기에 카드수수료 1.5%를 떼면 47원이 남는다. 인건비에 은행 이자까지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임대 사업자라면 임대료만 겨우 낸다.

과거 주유소 마진율은 10%가 넘었다. 휘발유값이 1500원이던 시절에도 1리터당 200원은 남겼다. 카드 대신 현금을 내는 고객도 많았다. 8년전인 2006년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400~1500원 수준이었다. 이때만 해도 주유소 사장들은 비교적 괜찮았다. 물론 당시 주유소 사장들이 폭리를 취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이 너무 빨리, 큰 폭으로 왜곡됐다.
자료 한국주유소협회 © News1 류수정 디자이너

◇'묘한 기름값'에서 시작한 시장 왜곡

주유소 업계는 이명박 정부 시절 주유 시장이 왜곡됐다고 보고 있다. 시장 왜곡은 '묘한 기름값' 발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기름값이 묘하다'고 언급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국제 유가가 140달러일 때 주유소 휘발유값이 2000원했다면 유가가 80달러 수준이면 더 싸야 할텐데 지금 1800~1900원 정도 하니 주유소의 이런 행태가 묘하다"고 지적했다.

언뜻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유가에 밀접한 환율은 계산하지 않았다. 기름값이 내려도 환율이 뛰면 비싸게 기름을 사와야 한다. 또 2008년에 유류세를 10% 인상한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묘한 기름값'만 부각돼 정부는 기름값과 전쟁을 벌였다.

정유업체에 회계장부를 내놓으라고 압박했고 직접 정유사의 출하 가격을 인하하도록 유도했다. 알뜰주유소와 대안주유소가 나왔고 셀프주유소를 확대하도록 종용했다.

2011년말 1호 알뜰주유소가 생겼다. 처음엔 100원 싸게 팔겠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실제 인하폭은 20~30원에 불과했다. 마진율이 이미 바닥이다보니 알뜰주유소라고 해서 '밑지는 장사'를 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알뜰주유소 더 늘린다" vs "세금 낮춰야"

한국 규모의 경제상황에서 적정한 주유소 숫자는 8000개 정도라고 한다. 현재보다 4000~5000개를 더 줄여야 적정한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반면 정부는 '묘한 기름값'을 잡기 위해 알뜰주유소를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까지 현재 1000개 수준인 알뜰주유소를 1300개로 늘릴 방침이다. 주유소 시장은 이미 포화된 상태여서 한쪽에서는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데, 정부는 주유소를 더 늘리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존 주유소 운영자들이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경영난으로 폐업하고 싶지만 환경오염 개선비로 수억원을 내야 해서 폐업도 쉽지않은 실정이다.

정유업계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세금인하'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휘발유 원가 중 약 57%는 세금이다. 경유도 약 50% 가량이 세금이다. 세금을 내리면 실질적으로 소비자들이 느끼는 휘발유값이 내려갈 뿐만 아니라 주유소도 적정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석유 산업은 이미 마진이 거의 없는 시장이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오일 등 주요 정유업체들의 지난해 실적 가운데 정유 부문은 대부분 적자다. SK이노베이션 정유 자회사인 SK에너지는 지난해 4분기 309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에쓰오일은 3000억원의 적자를, GS칼텍스은 1000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일반 소비자들도 높은 기름값에 힘들어 하지만 정유업체들과 주유소 업체들도 낮은 마진에 허덕이고 있다. 정부는 소비자와 주유소, 정유업계가 모두 만족할만한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xpe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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