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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영화읽기]프리즈너스-고통과 마주하다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2013-10-19 00:50 송고


'고통'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고통이 잔인한 이유는 고통스러워도 시간은 계속 간다는 것.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이상에야 슬프거나 괴롭거나 아프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어쨌든 고통이라는 늘 생소하기만 한 이름 앞에 어떤 이는 그냥 슬프거나 괴롭거나 아픈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맞서 싸우기도 한다.

물론 얼핏 보기엔 후자 쪽이 전자보다 좀 더 용감해 보인다.

하지만 '용기'는 가끔 '무모함'으로 쉽게 판가름 나기도 한다. 자칫 고통에 맞서다가는 더 힘들어질 지도 모르는 일. 당신이라면 과연 어떡하겠는가.


<프리즈너스>에서 켈러(휴 잭맨)는 후자를 택한다. 어느 날 저녁 어린 딸을 잃어버린 그는 갑자기 자신과 가족들에게 닥친 그 고통에 맞서 싸운다.

딸이 사라지자마자 마지막으로 놀았던 장소에서 알렉스(폴 다노)라는 용의자가 잡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되고, 알렉스가 범인이라고 확신한 켈러는 그를 계속 뒤쫓는다.

자신이 만약 켈러 입장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프리즈너스>는 이후 변해가는 켈러의 모습을 통해 그게 옳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알렉스를 잡아 가둔 켈러는 이후 그에게 온갖 고문을 다 가하며 딸의 행방을 캐묻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점점 괴물이 되어 간다.

하지만 아무리 괴물로 변해가더라도 딸을 찾으려는 아버지 입장에서 알렉스가 진짜 범인이기만 하다면 충분히 용서받지 않겠는가. 과연 알렉스는 진범일까.


하지만 <프리즈너스>에서 알렉스가 켈러의 딸을 진짜 납치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 지점에서 <프리즈너스>는 봉준호 감독의 출세작인 <살인의 추억>이나 데이빗 핀처 감독의 <조디악>과 닮은 부분이 많다.

세 편의 영화 모두 범인보다는 그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도 <프리즈너스>는 마지막에 범인을 확실히 밝힌다는 점에서 극적인 쾌감이 뛰어나지만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역시나 선명한 걸작임에 틀림없다.

그런 탓에 이 영화는 제작 전부터 각본을 탐냈던 이들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아무튼 동·서양을 망라한 세 편의 걸작들이 공통적으로 범인을 잡으려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스릴러 영화 특유의 극적인 재미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살인의 추억>은 당시 5공 군사정권 하에서 벌어졌던 불합리한 공권력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다뤘고, <조디악>은 살인범을 쫓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집착과 강박에 대해 비교적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프리즈너스>는 고통에 대처하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대단히 철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람이라면 고통에 대해서는 누구나 자기부정 습성이 있다. 그것은 보통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에서 백사장(황정민)이 주인공 선우(이병헌)에게 "인생은 고통이야"라는 명대사를 날렸던 것처럼 삶은 고통으로 가득하다.

불가(佛家)에서 제시한 인생에 대한 세 가지 명제인 '삼법인(三法印)' 중에도 '일체개고(一切皆苦:모든 것이 고통이다)'라는 가르침이 있다. 결론적으로 고통 없는 삶이란 없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언을 남겼지만 우리는 고통 받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즉 살아있는 게 또 아닐까.

삶이 이런 만큼 결국 관건은 고통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다.

사실 고통을 이겨내는 건 어느 쪽이든 다 용기가 필요하다.

<프리즈너스>에서 켈러처럼 고통에 맞서 싸우는 거나 그렇지 않고 그냥 조용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아픈 건 매 한 가지 아닌가.

그래서 <프리즈너스>에서는 일찌감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우리가 고통 받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기독교의 설교를 통해 고통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어차피 자기의지와는 관계없이 태어난 인생, 굳이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할 필요까지 없이 고통은 그냥 살면서 당연히 내야 하는 '세금'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세금은 늘 반복되고, 내고 나면 쉽게 잊혀 진다.

인생은 온통 고통이라고 했던 불가에서도 비슷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불가의 삼법인(三法印)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도 있는데 고통과 관련해 쉽게 풀이하자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의미다.

고통스러워도 시간은 계속 흐르는 현실이 완전히 잔인하지만은 아니다.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고통은 동시에 치유다.

사실 <프리즈너스>에서 켈러의 딸을 유괴한 진짜 범인은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고통이 바로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고통을 공유하기 보다는 전가시키려고만 했다.

고통은 '공유'하면 반감되지만 남에게 '전가'시키면 범죄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생이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범죄자로 전락하지 않을 바에야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터득해가는 어렵고도 긴 과정 같은 게 아닐까.

2일 개봉. 러닝타임 153분.


lucas0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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