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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영화읽기]잡스-'혁신'을 말하다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2013-09-07 04:02 송고


'혁신(革新)'의 사전적 의미는 '새롭게 바꾼다'는 것이다. 그렇게 혁신의 구성요소는 '새로움'과 '변화'로 간단하게 요약된다.
그럴 경우 오래된 풍습이나 관습, 조직, 방법 등을 새롭게 바꾸는 것은 모조리 혁신이 될 수 있다.

심지어 기업에서 기존에 없던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조차 혁신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무언가를 새롭게 바꾸기만 하면 전부 혁신이라 쉽게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혁신이 신제품 출시와 같은 개념일 수는 없지 않을까. 혁신이 그렇게 쉬울 리는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혁신이란 무엇일까. 분명 '새롭게 바꾼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더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 단언컨대 혁신에도 영혼은 있다.


영화 <잡스>는 '스티브 잡스'라는 한 천재의 삶을 통해 혁신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새롭게 바꾼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바로 '마음'이라는 단어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첫 장면의 아이팟(iPod) 출시현장에서 스티브 잡스(애쉬튼 커쳐)는 그것을 아예 대놓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을 주고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이나 헌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후 결코 순탄치 않았던 스티브 잡스의 삶을 잔잔하면서도 힘 있게 그려가는 <잡스>는 '세상에 헌신하려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들' 간의 대결구도로 일관되게 진행된다.

그것은 또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는 '별종'과 '시스템' 간의 대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대결의 핵심 관전포인트는 '세상에 헌신하려는 자'보다 '그렇지 않는 자들'이 정작 시스템에 의해 보호를 받는 아이러니에 있다.

'애플(apple)'을 창립했던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출시 이후 파워 게임에 밀려 회사를 떠나야만 했던 현실은 대표적인 사례다.

잡스는 회사의 이익보다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매킨토시를 출시하려 했으나 수익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사회에서 거부당하고 결국 회사까지 떠난다.

물론 잡스에게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는 그의 독선적인 삶과 리더십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그리고 있다.

그래도 잡스가 '고집불통'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지키고자 했던 한 가지 철학은 분명했고, 그것은 바로 '세상에 대한 헌신'이었다.

그 지점에서 시스템이 안고 있는 모순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렸을 때 우리는 누구나 "착하게 살아라"는 어른들의 가르침을 자주 듣는다. 굳이 어른들로부터 듣지 않아도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진다.

자본주의의 냉엄한 경쟁시스템에 휩쓸리기 시작하면서 승리를 위해서는 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언의 가르침에 점점 익숙해져 가게 된다.

결국에는 내가 차지할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무참히 짓밟는 것마저 스스로 정당화시킨다.

가장 슬픈 현실은 우리들의 '꿈'마저 사실은 그것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 수평적인 꿈을 꾸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꿈은 수직적 신분상승의지만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꿈으로 여긴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꿈은 세상을 더욱 살벌하게 만들어왔다.


바로 지금의 시스템이 안고 있는 모순이고, 영화가 실제 사실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스티브 잡스는 시스템의 그러한 모순에 맞서 싸운 삶을 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잡스가 오히려 시스템 부적응자이자 별종으로 여겨지는 세상, 왠지 참담하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잡스는 감히 외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친놈들이 사실은 세상을 바꾼다."

혁신의 구성요소에서 '새로움'은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순수했던 옛날로 돌아가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것, 그게 바로 혁신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분명한 건 잡스가 없었다면 돈 없는 서민들은 아직도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한다는 일은 아예 생각조차 못했을지 모른다.

모두가 이익을 위해 세상에 대한 헌신을 거부할 때 잡스는 그렇게 먼저 마음의 문을 열었다.

물론 그 결정으로 세상은 지금 아주 크게 바뀌었다. 그가 진정으로 혁신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잡스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다들 이익이나 승리에 미쳐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는 세상에 헌신할 수 있었을까.

비록 영화상에서는 빠졌지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는 데 있었고, 잡스는 췌장암 판정을 받은 뒤인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가르침을 들어보자.

"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8월29일 개봉. 상영시간 127분.


lucas0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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